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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모든 사물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물물교환이 이룬 소통과 그것이 이룬 상큼한 기적!


두얼(계륜미)과 창얼(임진희)은 자매입니다. 그녀들은 카페를 엽니다. 세상에 없는 멋진 카페를 열겠다는 꿈을 가진 그녀들은 철저한 주변 조사(지인들에게 케이크를 만들어 먹이는 방법)을 통해 요일별로 케이크 메뉴도 정하고 야심 차게 카페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장사는 영 신통치 않아요. 전에 다니던 직장 사람들과 친구들을 불러 개업식을 하건만 다들 잡동사니들을 개업 선물로 가지고 옵니다. 드물고 드문 단골 손님 중 한 남자는 서른 다섯 개의 비누를 들고 와서 비누 하나씩에 담긴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고 그 이야기가 담긴 비누로 물물교환을 하자고 제안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처치 곤란한 개업 선물과 미덥잖은 제안이 놀라운 일을 만들게 됩니다. 그게 바로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입니다.

 


영화 예고편을 보거나 포스터를 봤을 땐 이런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 보면 엄청 배고파지겠다, 커피랑 케이크랑 얼마나 맛있게 보일까.’ 하지만 그런 예상은 영화의 프롤로그가 지나면 사라집니다. 영화는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카페 음식을 비추고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나 들려주는 잔뜩 꾸민 영화가 절대 아닙니다. 카페에 모여 서로 교환이 이뤄지는 물건들을 통해 이야기를 교환하고 그 이야기의 교환은 관객에게 동일한 질문으로 전달되기도 하며 마침내 영화 속 인물들이 삶의 방향을 찾게 만들어줍니다. , 겉멋들어 포즈만 잔뜩 취하는 영화가 아니라 잔디밭에 편하게 주저앉아 진솔한 이야기를 해주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세 가지 큰 질문 상황을 두고 다큐멘터리 방식을 차용합니다. ‘교통사고가 났다, 가해자가 보상으로 카라 꽃을 대신한다고 한다면 그 꽃을 그냥 받을 것인가, 돈을 요구할 것인가?’, 두얼과  창얼 자매의 지금까지의 삶이 반영된 질문으로, ‘세계 여행과 공부 중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등장하고 매 질문마다 대만의 일반인들을 인터뷰한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관객은 최소한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해서 영화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영화의 방식은 영화 상영 후에 있었던 ‘CGV 무비꼴라쥬 시네마톡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이 날은 CBS라디오 <신지혜의 영화음악> DJ 신지혜님과 함께 하는 시네마톡이었습니다. 신지혜 아나운서는 관객에게 아주 편안한 대화 상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감상과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다양하고 재미난 대화가 격이 없이 흐르는 자리였는데, 행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남과 여, 영화와 독서를 좋아하신다는 중년의 관객, 집에 있는 커피 메이커와 영화 속 에스프레소 머신을 교환하고 싶다는 관객,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며 진지한 모습을 보였던 관객 등 다양한 관객의 모습을 영화가 끝난 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네마톡이 아니면 전혀 있을 수 없는 풍경이었지요. 일반 상영이었다면 옆에 앉았던 관객이 누구였는지 관심이나 있었을까요? 이렇게 속속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신지혜 아나운서의 편안함과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가 담은 이야기 덕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지혜 아나운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모든 사물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느꼈다. 우리 모두는 어떤 결핍을 갖고 살아가는데 물물교환과 이야기의 교환이라는 소통을 통해 심리적 가치의 중요함을 매우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라고. 그 말은 정확히 영화의 성격과 매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건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 또는 어떤 특정 물건을 수집하는 행위는 결국 그 물건 안에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겠지요. 내 수중에 들어오고 나에 의해 사용되고 나에 의해 관리되는 것은 모두 나 그리고 우리와 연관된 이야기를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의미가 강해지면 우리는 그것을 수집하거나 소중하게 다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결핍을 갖고 있다는 것도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영화 속에서 언니인 두얼은 성실하게 공부해서 현실에 정착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통해 인맥도 넓혔어요. 반면 동생인 창얼은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여행을 즐겨 합니다. 이 둘은 각자의 개성대로 살았지만 각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결핍을 느낍니다. 영화의 말미, 이 자매가 선택하는 길도 결국 이 결핍을 설명합니다. 동시에 심리적인 가치에 따라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삶을 생동하게 만든다는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이 영화의 재미난 요소 중 하나는 두 자매와 어머니의 대화 상황입니다. 어머니는 늘 딸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지요. 헌데 그 잔소리에 대한 첫 반응은 직접 청자인 자매가 아닌 주변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태운 택시의 기사나 식당의 아주머니 등이 그 반응의 주인공이에요. 그 때마다 어머니는 당신이 아니라 내 딸들에게 한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영화의 단락을 나눠주는 듯한 역할을 하듯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설정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는 끼리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야기의 청자는 그 끼리끼리의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할 수 있고 그렇게 이야기는 퍼진다는 것, 그리고 끼리끼리의 이야기도 제 3자의 공감과 관심을 끌어낼 수 있고 그것이 이야기의 매력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물물교환이라는 소재를 통해 소통과 삶의 본질에 대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상쾌하게 풀어내는 이 영화는 대만 영화의 오늘을 느끼게도 합니다. 신지혜 아나운서도 언급했지만 오늘의 대만영화는 에드워드 양과 허우 샤오시엔의 후예들이 이끈다고 할 수 있지요. 선배들이 다소 어둡고 무거운 대만의 과거사를 소재로 했다면 그 후예들은 좀 더 경쾌하고 밝게 오늘의 대만을 소재로 다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년 부산 국제영화제를 통해 본 대만 영화 <사랑이 찾아올 때> <오브아, 타이페이> 역시 이런 대만 영화의 오늘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국민정서가 비슷해서인지 영화를 보면서 그 현실이 낯설지 않게 보이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대만 영화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왠지 대한민국에서 대만 영화의 잔잔한 바람이 일지 않을까 기대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