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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헤어드레서>카티를 만난 건 제겐 행운이었어요,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헤어드레서>에서 카티를 만난 행운이었어요, 이제 이야기를 해보죠...

영화 <헤어드레서>에서 카티(가브리엘라 마리아 슈메이데)를 만난 건 어쩌면 제겐 행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날은 모든 직장인들이 평생 불치병으로 안고 산다는 월요병이 온 세포를 장악한 날이었습니다. 게다가 추적추적 그치지 않고 내리는 장맛비는 몸과 마음을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끌고 내려가는 날이었죠. 하지만 영화 보는 걸 무척 좋아하는 제게 극장에 간다는 것과 영화 상영 후 시네마톡이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의 희망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극장으로 향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힘이었을 거에요. 그러나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바로 행운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제 제가 왜 <헤어드레서>를 본 게 제게 행운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씩 마시며 영화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거구의 여인 카티가 춤을 추고 있어요. 그런데 그다지 예뻐 보이지도 젊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클럽에서 만난 (역시 거구의)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듯 보이더니 이 여자, 남자의 에프터를 공손하게 거절합니다. 영화 시작 초입부터 도리스 되리 감독의 유명한 전작 <파니 핑크>와 이 영화를 비교해보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살짝 꺼내 들던 제 반응은 이랬습니다. 뭐야? 왜 거절해?’ 그래요, 저는 분수에 넘치게 카티의 취향까지도 간섭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그저 그 남자가 맘에 안 들었을 뿐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저는 저 거구의 예쁘지도 않은 여자가 뭘 믿고 저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요, 욕 먹어 마땅한 생각이죠. 어쨌든 그렇게 제 생각과 엇나가기 시작한 카티는 이제 거리낌 없이 자신만의 삶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난 카티는 어찌나 거구인지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해요. 그녀는 줄넘기 끈을 벽에 묶고 그 줄을 당기는 힘으로 몸을 일으킵니다. 오래 서있을 만큼 다리가 튼튼하지도 못해 간이 의자를 늘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앉고, 그렇게 앉아 있으면서도 샌드위치 같은 걸 계속 먹어요. 예뻐 보이지 않을 뿐 더러 뭔가 불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니 지하철 환승 구간 계단을 느릿느릿 걸으며 앞길을 막고, 만원 지하철 안에서 자리를 옮기려고 지나가다 제 가방이나 몸을 쳤던 거구의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옆에 있는 사람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왔었죠. 그래요, 역시 비난 받을 만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카티가 살아가는 모습을 좀 더 들여다보면서 저는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낍니다. 영화는 헤어드레서로서 누군가의 머리를 메이크업해주고 있는 카티가 그 손님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과거사를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사실 카티는 전문 헤어 디자이너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과거의 시점에 그녀는 이혼을 했고 이사를 했으며 직업이 없어 힘겹게 구직 활동과 창업 활동을 하면서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녀가 말해주는 그녀의 과거사는 엄청납니다. 희로애락의 결집이며 특히 노와 애의 폭발이죠. 그런데 그녀의 삶은 참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100kg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체구를 가진 그녀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깃털처럼 가벼워요. 생각을 하면 실천을 위해 움직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걸 찾습니다. A를 끌어들여 B를 막고, C를 시작해 애초에 끌어들인 A를 원상복귀 시키기도 해요. 그리고 그 과정은 보는 입장에선 한없이 단순해 보입니다. 게다가 사소한 것에 주눅들지도 않고, 못마땅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묻거나 못마땅함을 말합니다. 그녀, 움츠러드는 게 습관일 것처럼 보이지만 당당히 어깨를 펴고 사뿐히 걷는 게 그녀의 삶인 거에요.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생기고 온갖 의외의 상황이 그녀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음에도 그녀는 경쾌하게 곡예를 합니다. 영화 내내 흐르는쿵짝쿵짝하는 브라스 음악은 마치 그녀의 곡예에 흥을 돋우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몸은 100kg이 넘게 무겁지만 카티는 정말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며 삶을 삽니다. 중요한 건 그녀가 타인의 삶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이에요. 타인의 미적 기준은 일찌감치 그녀를 의기소침해지게 할 대상은 되지도 못합니다. 헤어드레서로서 자부심도 대단해서 손님이 그녀의 선택을 따라줄 때와 만족해할 때 최고의 기쁨을 느끼기도 해요. 그녀는 흔한 말로 정말 쿨 합니다. 상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늘 발생하지만 그걸 붙들고 늘어지지 않아요. 경쾌하게 박차고 일어납니다.

이런 카티의 삶을 1시간 넘게 보고 있자니 저의 선입견은 무참히 박살 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은 뚱뚱하지만 그렇다고 뚱뚱한 남자를 무조건 받아들일 순 없다는 그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고, 아침마다 줄넘기 줄에 의지해야지만 몸을 일으킬 수 있는 그녀가 둔해 보인다기 보다 삶의 의지가 대단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그녀는 그 큰 몸을 씻으면서도 누구에게 도와달라 하지 않고, 클럽 갈 때 입었던 드레스가 몸을 조이자 같은 전차를 탄 옆자리 여성에게 지퍼를 열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그녀에게 세상의 시선 따위에 대한 개념이나 있을 지 모르겠어요. 영화를 보는 약 2시간여 동안 전 카티라는 여성에게 완전히 매료 당하고 말았답니다. 그녀처럼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며, 남한테 피해 안주고, 비겁하게 의지하지도 않으며, 당당하고, 쿨한 여성 캐릭터를 언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나 싶을 만큼 카티는 멋진 여성임을 깨닫게 됩니다. (브리짓 존스는 좀 귀여운 척을 한다는 면에서 카티보다 한 수 아래라고 판단합니다.^^)

영화 상영 후 CGV무비꼴라쥬 시네마톡을 함께 했던 이해영 감독님도 그런 카티의 경쾌함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처음 카티를 만났던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때는 관객들이 모두 그 경쾌함에 빠져 흥겹게 영화를 봤다는 경험담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영화 <헤어드레서> 속의 카티는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세상엔 숱한 자기계발서들이 있죠? <시크릿><선물><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같은. 생각해보면 카티는 그런 세상의시크릿을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고, 어떤선물을 맹목적으로 기대하지도 않으며, ‘치즈를 옮기는 것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고, 바로 그 잘 알고 있음을 이용해 스스로의 삶을 잘 살 뿐이지요. 자기 스스로를 잘 모르는데 성공한 누군가가 쓴 그들의 삶이 스스로의 삶의 지표가 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니라는 걸 저는 카티를 보면서, <헤어드레서>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이쯤 되면 왜 <헤어드레서>를 본 것이, 피곤에 지친 월요병을 짊어지고 영화를 본 것이, 제겐 행운인지 설명이 됐을까요? 미용실에서 머리 하고 나오면 상쾌한 그런 기분 또한 영화 <헤어드레서>는 선사합니다. 장맛비, 무더위 속에서 느끼는 상큼함의 크기는 대단했었답니다. 이 행운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카티가 지금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