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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인 어 베러 월드]키에르케고르의 후예들이 전하는 삶의 필연 그리고 희망


안톤(미카엘 페르스브렁)은 수단의 난민 캠프에서 의료봉사를 한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의 성별을 맞히는 비인간적인 내기를 하는 반군지도자의 만행을 보며 분노하던 그는 어느 날 부상당해 자신의 진료소를 찾은 반군지도자를 치료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안톤의 아들 엘리아스(마르쿠스 리가르드)는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 폭력 앞에 저항하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던 엘리아스는 전학 온 크리스티안(윌리엄 욘크 닐슨)의 도움으로 그 폭력에 저항하고 복수하게 된다.

크리스티안은 암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죽음을 탓하며 아버지와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작은 악마를 품고 있는 듯한 이 소년은 세상의 모든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수잔 비에르 감독의 영화 <인 어 베러 월드>는 관객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수없이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며 사는 게 옳은가와 폭력과 절망이 드리운 세상에 사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간 안톤은 놀이터에서 어이없는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그런 폭력에 저항하지 않는 안톤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건 아이들이다. 왜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른 자에게 맞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아이들에게 안톤은 가르침을 준다. 폭력이 두려워서 저항하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렵지 않기 때문에 저항 없이 맞서는 것이라고 말이다. 같이 맞서 봐야 싸움만 계속될 거고, 참지 않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안톤의 이런 태도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진정 용기에서 나오는 것인지 극도의 공포를 가리기 위한 수단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안톤의 태도가 된다 

한편, 안톤의 폭력에 대한 대처방식은 크리스티안을 자극한다. 소년은 안톤이 하지 않은 복수를 스스로 계획한다. 안톤의 아들인 엘리아스와 함께 폭력 가해자의 트럭을 폭파시켜버리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그 계획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겉잡을 수 없는 대형 사고를 만들어버린다. 자신이 계획한 복수가 만들어낸 끔찍한 사고로 인한 죄책감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이 넘쳐 결국 자살을 하려는 크리스티안을 다시 보듬는 손길은 안톤에게서 나온다. 크리스티안에 대한 애정은 넘치지만 결국 그가 필요한 애정은 표하지 못했던 크리스티안의 아버지나 학교 폭력배에 복수를 한 크리스티안과 엘리아스에게 진정한 도움이나 가르침도 주지 못하는 무능한 학교 선생님도 건네지 못한 도움의 손길이 안톤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즉 폭력의 근원과 그것으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과 그런 본질을 보듬는 것이 폭력이 가득한 세상에서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임을 말한다.   

결국 폭력을 폭력으로 대처하는 건 결국 어떤 해결점으로의 도달이 아닌 끊임없는 비극의 양산이 될 뿐임을 말한다. 그리고 폭력으로 인해 좌절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내면의 용기를 만들어 진정한 의미의 저항을 하면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인 어 베러 월드>가 전하는 메시지다.

동시에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도 영화는 보여준다. 안톤은 폭력에 바로 저항하려는 마음을 견뎌내지만 그 분을 풀기 위해 호수에 뛰어든다. 짐승 같은 본성을 드러내는 반군지도자를 끝내 못 견뎌내고 무방비 상태로 방치해버린 스스로에 좌절하기도 한다. 이처럼 폭력에 진정한 용기로 저항하는 방식이나 참고 견디는 방식에도 한계는 있을 수 밖에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힘든 걸 견뎌냈을 때, 그리고 견뎌낼 수 있도록 서로 도울 때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영화는 하게 만든다.

덴마크 국민의 5분의 1이 관람했다는 이 영화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후예들이 전하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로 유명한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에 있어서 신은 세상의 중심이다.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는 인간의 삶은 죽음과 유한성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삶은 죽음과 유한성에 대한 극복의 과정이고 그 극복이 좌절 될 때 삶의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한다는 것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안톤은 자신을 때린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하며 그는 무지하기에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고, 자신은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참고 저항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라는 성경에 언급된 말도 한다. 즉 기독교적 관점에서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무지하지 않기에 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고, 모든 순간에 좌절이 닥칠 수 있으나 그것은 삶의 필연이며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요, 그를 통해 높은 단계의 삶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키에르케고르의 사상과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몸을 해치는 어떤 질병이라기보다 악에 굴복하고 죄를 짓는 정신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 어 베러 월드>의 안톤은 정확히 이런 키에르케고르적 인간의 대표적인 모습인 듯 하다. 관객은 안톤과 같은 삶이 비현실적이고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폭력의 악순환을 막는, 어쩌면 인간으로서 택할 수 있는 최선임을 깨닫게 되는 게 아닌가 한다. 힘들 것이 뻔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안톤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던져주는 축구공으로 행복하게 뛰어 노는 수단 아이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희망을 읽을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이 영화의 엔딩이 선사하는 쾌감이다. 이런 희망의 메시지가 수많은 경쟁작을 물리치고 2011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게 한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짐작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