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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슈퍼 에이트]스필버그 키즈를 위한 추억의 선물세트

사고로 죽은 어머니의 장례식날, 소년 조(조엘 코트니)는 풀이 죽어 집 앞 그네에 앉아있다. 아직 이런 이별을 받아들이기에 소년은 어리다. 경찰인 아버지 역시 아내를 잃은 슬픔을 잠시라도 잊는 수단으로 일을 선택한다. 그런 소년을 위로하는 것은 영화와 친구들이다. 좀비 영화의 광적인 팬인 소년들은 학교의 퀸카인 앨리스(엘르 패닝)를 여주인공으로 섭외하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자정이 다 된 때에 마을 기찻길 옆 폐 건물에서 대망의 영화 촬영을 한다. 저 멀리 예상치 못했던 기차까지 다가오는 기가 막힌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랴부랴 연기를 하고 촬영을 하던 이들의 눈 앞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돌진하던 기차를 향해 역 주행하던 트럭이 기차와 충돌하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굉음과 함께 기차는 전복되고 사방에 차체 파편이 날아온다. 그날 밤의 사건을 시작으로 이들이 사는 마을에는 커다란 위기가 찾아오고 소년, 소녀 무리는 어른들도 속수무책인 그 사건의 한 중간으로 들어가 마을을 구하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힘을 합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제작자로 J.J.에이브람스는 감독으로 만난 <슈퍼 에이트>는 소위 스필버그 키즈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추억의 선물 세트다.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매년 여름방학 때마다 극장으로 달려가 스티븐 스필버그’(제작이든 감독이든)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슈퍼 에이트>를 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어떤 관객들은 영화를 찍겠다고 가지각색 소품을 동원하고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는 이 주인공들을 보면서 스스로의 10대 때를 회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들의 모습은 스필버그나 J.J.에이브람스의 자전적 모습이리라 짐작도 하게 된다.

스필버그 키즈들이 익숙한 장치로 여길만한 요소는 <슈퍼 에이트>에 가득 담겨 있다. 먼저 주인공 소년 조 램’. 어머니를 사고로 잃은 슬픔을 갖고 있지만 그걸 내색하지 못하고 담담해져야만 하는 조숙한 소년은 스필버그 영화 속에 단골 등장인물이다. <구니스>에서 천식 호흡기를 달고 다녔던 미키(숀 애스틴), <E.T>의 엘리엇(핸리 토마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는 아니지만 역시 80년대 중반에 발표됐던 <스텐 바이 미>의 고디(윌 휘튼) 역시 <슈퍼 에이트>조 램을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다. 조의 친구들을 보자. 조금 둔한 친구, 좀비 영화에 환장한 괴짜에 어딘가 좀 허술한 친구들, 그리고 범접하기 어려웠지만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우정 이상의 관계를 맺게 되는 퀸카 소녀의 조합은 딱 <구니스>의 그 패거리들의 모습이다. 친구들이 함께 모여 ‘My Sharona’를 부르는 장면은 <스텐 바이 미>의 친구들이 하룻동안의 여행길에서 함께 부른 ‘Lollipop’을 연상시킨다.


마을에 닥친 위기에 대한 대처방식 역시 스필버그 영화 같은 표시다. 어른들은 우왕좌왕 대책이 없다. 게다가 아이들을 챙기는 사람도 없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어쩔 수 없는 무신경한 상태를 즐긴다. 그들에겐 오히려 그런 무신경한 상태가 자유가 된다. 그들 마음대로 문제의 해법을 찾고 그들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뛰어든다. 그야말로 그들을 막는 장애요소인 어른들의 잔소리가 없다. 영화 속에서 10대들이 그렇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던 당시의 10대들은 이제 나이가 들었음에도 영화 속에서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며 모험을 경험하는 10대를 보면서 여전히 마음 속에서 신이 난다. 다시 이팔청춘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순수함과 진정성이 힘을 발휘하는 모습 그리고 그 모든 사태의 끝에 가족과 친구가 남고 화해와 평화가 도래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스필버그 방식이다.

여기에 외계 생명체가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부분은 <쥬라기 공원>이나 <우주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슈퍼 에이트> J.J.에이브람스 감독의 영화이기도 하다. 어쩌면 <클로버필드>의 또 다른 이야기로 볼 만하다. 카메라를 쥔 평범한 인물들에 의해 찍힌 중요한 사건이 등장한다는 것은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초반 기차가 전복되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이나 외계생명체가 파놓은 싱크홀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J.J.에이브람스의 전작 <클로버필드>의 방식에 가깝다.

한편 싱크홀 시퀀스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클로버필드> 제작 단계에 노출된 티저 포스터를 보고 <괴물>의 헐리웃 리메이크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J.J. 에이브람스가 봉준호의 <괴물>에 바치는 오마주라 여겨질 정도로 싱크홀 시퀀스는 정말 <괴물>과 유사하다.

 

이렇게 추억에 젖게 하고 볼거리가 충분한 영화이긴 하지만 <슈퍼 에이트><트랜스포머> 같은 여름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는 없다. 처음 기차가 폭발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그렇게 대규모의 폭발 장면이나 거대한 액션 장면은 거의 없다. 외계 생명체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부분 묘사도 굉장히 고전적이다. 마치 미니어쳐를 처음으로 도입하고 편집 스킬을 이용해 장면 효과를 극대화했던 과거의 방식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생명체에 공격 당하는 장면을 나열하는 중반부의 방식도 그렇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블록버스터에서 기대할 만한 장면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이들의 아기자기한 해법들이 오히려 다양하게 펼쳐지므로 장면보다는 그 아기자기한 아이디어에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때문에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후반부가 다소 처지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영화의 결말이 어쩌면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다소 쉽게 풀리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는 애초에 요즘 블록버스터처럼 만들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짐작을 더욱 확신하게 하는 것이 엔드 크레딧에 나오는 <THE CASE>라는 이 소년들의 단편 작품이다. ‘슈퍼8 단편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이들이 영화 속에서 내내 촬영했던 좀비 영화가 드디어 완성됐고 관객들은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그들의 아마추어 냄새가 팍팍 풍기는 좀비 영화를 볼 수 있다. 이로서 영화는 자신의 의도가 이 소년들과 과거에 스필버그 영화를 좋아했던 스필버그 키즈출신들과 영화를 통해 유년기를 행복하게 보냈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었음을 고백하는 것 같다. 

 

스필버그의 영화들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J.J.에이브람스 같은 감독의 존재는 행복한 일이다. 예전의 그 스타일을 낡은 느낌 없이 다시 재현시켜주는 감독이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은 스필버그에게나 관객에게나 참 감사한 일이 아닐까 한다. 꾸준히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온 안성탕면의 최근 광고에 그 상품광고의 아이콘이었던 배우 강부자가 젊은 배우 이유리와 함께 나와 그 아이콘의 역할을 젊은 배우에게 넘겨주는 메시지를 전하는 광고처럼, <슈퍼  에이트>는 이제 자신의 스타일을 잘 실행할 수 있는 후배 감독을 양성한 감독과 그 바통을 이어받은 후배 감독의 멋들어진 만남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