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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하트 오브 더 씨] 욕망이 가라앉은 바다 한가운데 떠오른 인간성

 

 

하트 오브 더 씨 In the heart of the sea

 

욕망이 가라앉은 바다 한가운데 떠오른 인간성

 

 

1819년 향유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떠난 포경선 에식스호. 고래를 잡아 획득한 기름으로 돈을 벌고 신분상승도 하고 싶어하는 선원들의 욕망은 위험천만한 바다로 가는 여정에 힘을 불어넣는다. 일주일, 열흘에 끝날 일이 아니고 수개월 아니 수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길임에도 부와 명예는 그들을 바다로 떠나게 할 명분이 되어준다.

마침내 고래가 떼로 서식하는 지점에 도달하고 고래를 잡아 기름통을 채워나가기 시작하는 희망적인 순간도 잠시, 엄청난 움직임이 이들에게 다가온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대왕고래의 존재에 대해 위험성을 경고 받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고래잡이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할 뿐이었다. 두려움 반, 의심 반이었던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대왕고래의 풍모에 경탄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에식스호는 파괴된다.

 

 

 

 

그로부터 94일간을 표류하며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간신히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작가 허먼 멜빌(벤 위쇼)은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대왕고래 이야기도 그렇고 밝혀지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한 호기심으로 생존자인 니커슨(브랜단 글리슨)을 설득한 끝에 간신히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에식스호의 경험이 남긴 트라우마로 30년이 지나도록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니커슨이 어렵게 꺼내기 시작한 이야기는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허먼 멜빌과 니커슨이 밤새 나누는 에식스호 선원들이 겪은 이야기가 시각화되어 스크린에 펼쳐지는데 그것이 영화 [하트 오브 더 씨]이고 이것이 후에 허먼 멜빌의 역작 [모비딕]의 소재가 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1820년에 있었던 에식스호 대참사를 세세하게 기록하며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너대니얼 필브릭의 [바다 한가운데서(in the heart of the sea)]를 기반으로 하면서 이 사건이 작가 허먼 멜빌에게 영감을 주어 [모비딕]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덧댔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의 필자가 허먼 멜빌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비딕]의 작가를 [바다 한가운데서]로 집어넣으며 영화로서 풍성한 플롯을 완성한 것이다. 그 덕에 영화는 실화가 주는 사실성을 끌어오면서 입과 글로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이야기의 힘을 느끼게 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영화라는 매체의 매력으로 모아놓은 치밀함을 보인다. 아이맥스의 거대한 화면으로 관객을 바다 한가운데에 동참하게 만들고 돌비애트모스 사운드 믹싱으로 대왕고래가 만드는 거친 물살 속에 관객을 휩싸이게 만든다. 그저 눈에 보이는 스펙터클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과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내는 것은 이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논픽션과 픽션을 한 데 엮어 이야기를 구성한 감독 론 하워드의 진중한 연출 스타일로 보인다.      

 

 

 

 

부와 명예를 좇아 에식스호에 승선한 선원들의 욕망은 거대한 사건을 맞닥뜨리며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영화는 그 때마다 마치 인간의 삶에 딜레마처럼 늘어붙은 생각거리를 대왕고래가 물질 하듯 툭툭 던져준다. 부와 명예를 위한 도전에 따르는 무모함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가,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선택도 용인될 수 있는가, 부와 명예를 위한 타협은 늘 정의롭지 않은 것인가 하는 문제들 말이다.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영화는 선장인 폴라드(벤자민 워커), 1등 항해사인 체이스(크리스 햄스워스)의 선택과 노인이 된 니커슨과 작가 멜빌의 대화를 통해 영화가 선택하는 답을 들려준다. 거대한 대왕고래를 만나 파괴되고 침몰한 에식스호와 함께 그들의 욕망은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고 그 위에 남아 표류한 것은 날 것 그대로의 인간성이었을 것이다. 그 인간성에서도 미와 추를 모두 경험한 그들이 그 끝에 선택하는 것과 그것을 이야기로 나누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답을 음미하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는 것이 이 영화를 감상하는 또 다른 맛이 될 것이다.    

 

 

 

 

 

이 영화는 픽션을 예찬한다. 14살의 나이에 에식스호에 오른 소년 니커슨(톰 홀랜드)은 생전 처음 느끼는 악취가 진동하는 고래 몸통 속으로 들어가서 기름을 채취하는 작업을 한다. 에식스호가 난파되고 94일을 표류하며 생존을 위해 끔찍한 선택을 해야 했던 순간을 겪는다. 어린 나이에 처음 겪어보는 모든 것들을 선택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니커슨에게 그 모든 것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그 시간의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결국 그에게 남은 인간성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의 트라우마를 걷어내는 힘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가간 작가에 의해 나온다는 것은 인간성을 지켜내며 싸우는 사람들에게 픽션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감독이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픽션이 세상을 구할 것처럼 예찬을 하긴 하지만 끝내 영화가 인정하는 것은 픽션이 현실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몇 번의 서신을 주고 받으며 어렵사리 찾아와 힘겹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허먼 멜빌에게 니커슨은 당신은 작가라고 하는데 나다니엘 호손은 못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당시의 멜빌은 호손에 비할 수 없는 작가였겠지만 에식스호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모비딕]이 발표된 후 나다니엘 호손이 극찬한 내용이 영화의 에필로그에 담겨있다. 위대한 작가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니커슨이지만 사실 그런 작가들에 의해 발표되는 픽션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니커슨 자신이 겪은 경험은 경이롭다. 그 어떤 완벽한 픽션도 현실을 능가할 수 없음을, 픽션은 현실의 반영일 뿐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