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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우먼 인 골드] 후세를 위해 지켜야 할 것

 

나치 점령 하에 오스트리아에 살았던 유대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은 언니의 사후 발견한 편지에서 나치에게 몰수당한 가족의 물품들을 되찾을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한다. 그 물품 중에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숙모 아델레의 초상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도 포함되어 있다.

나치의 강탈 후 ‘우먼 인 골드’라는 제목으로 바뀐 채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로 사랑받는 초상화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알트만 가의 개인 소유물이었던 것이다.

가족의 물품들을 환수하기 위해 변호사 랜드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와 함께 8년간 싸워야했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 ‘우먼 인 골드’다.

환수란 부적절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획득한 것을 원래의 주인에게 법적 효력을 지니는 방식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한 일이지만 역사와 정치가 만들어낸 구도 안에서는 상식과 정의가 길을 잃고 헤맨다.

그 덕에 권리를 지녔으되 권력이 없어 온갖 희생을 감수하며 승산 없어 보이는 싸움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거둔 성취는 결과를 알고 봐도 짜릿한 쾌감을 준다.

 

다 지난 일인 것 같지만 나치즘은 여전한 어둠이다.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을 넘어 찾아간 비엔나에서 마리아를 향해 모욕을 퍼붓는 시민과 끝까지 물품을 환수하지 않으려는 오스트리아 정부를 보자면 그 어떤 것도 종결되지 않았고 진정한 사과도 증발한 현실이 느껴진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때마침 부산 범어사 극락전에 봉안돼 있던 칠성도(七星圖) 세 점이 환수되어 수십 년 만에 본래의 위치로 돌아오게 됐다는 뉴스를 봤다.

문화재청의 발표에 의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16만여 점에 이르나 환수된 것은 고작 1만여 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침략과 지배, 약탈과 억압의 시대를 겪은 한국의 사정을 돌아봐도 그 어떤 것도 종결되지 않고 진정한 사과도 없이 여전히 현실에 드리운 어둠이 보이지 않는가.

그렇기에 ‘우먼 인 골드’가 내세우는 한 가지가 마음에 강렬하게 와 닿는다. 그것은 바로 후세를 위해 우리가 지향하고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법률적 도움을 의뢰받은 랜드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에게 우선시되었던 것은 돈이었다.


하지만 비엔나에서 자신의 선조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참혹함을 느낀 그의 안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솟구친다. 이젠 돈보다 자신이 지향해야 하고 지켜야 할 것에 더욱 가치를 두고 달리도록 마음이 움직인다. 마치 선조가 겪었던 참혹함이 여전히 드리운 현재의 삶이 후손들에게까지는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동요처럼 보인다.

정원에서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마리아의 시선 또한 단지 옛 생각에 젖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평생 자신을 떠나지 않았던 나치즘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뛰어노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지 않았을까.

8년간의 긴 싸움 끝에 이룬 기적은 후세에는 꼭 지켜지기를 바라는 정의를 위해 열린 문과 같기에 단단한 감동을 남긴다.

 

역사 속 비극과 클림트의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미스터리 플롯에 담아내 ‘베스트 오퍼’나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연상되는 감성이 느껴지며 진실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 속 인물의 강단과 연륜, 그것을 연기해내는 배우들의 명연 덕에 ‘필로미나의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을 연출했던 사이먼 커티스는 마치 꼼꼼하게 점토를 다루듯 다시 한 번 섬세하게 캐릭터를 구성하고 단단하게 이야기를 빚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