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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손님] 피리 부는 광대의 피눈물

 

 

호러 영화를 찾아보지 않은 지 오래됐다. 비디오테이프에 실려 바이러스처럼 떠도는 원혼이 주는 공포를 담은 ‘링’(1999년 김동빈 감독 연출, 신은경 주연의 한국판)을 본 후 호러 영화를 잘 보지 못했다.

‘링’을 본 후 눈을 감고 머리를 감는 게 공포였다. 한편 김태경 감독이 연출하고 김하늘이 주연한 ‘령’(2004)을 본 후 한국의 호러 영화도 잘 보지 않는다. 억지스런 짝퉁 깜짝 쇼에 싸구려 공포를 맛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1950년대, 아들 영남(구승현)의 폐병을 고치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악사 우룡(류승룡)은 폭우가 쏟아진 밤 이후 암시처럼 열린 산골마을로 들어선다.

외지인을 극도로 경계하고 촌장(이성민)이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이 마을의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며 피해를 주는 쥐떼들이다.

피리 부는 능력으로 귀때기 달린 짐승들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고 자랑하는 우룡에게 마을 사람들은 쥐를 쫓아내달라는 부탁을 하고, 촌장은 진짜로 쥐를 모두 쫓아내면 영남을 치료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신바람이 난 우룡은 피리 부는 능력과 특효약을 동원해 쥐를 쫓아내고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다. 그러나 그런 우룡이 마뜩찮은 촌장은 약속을 어기고 그가 빨갱이 간첩일 거라는 누명을 씌운다.

 

탐욕과 생존 본능으로 죄 짓기를 망설이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처참한 비극의 연쇄와 그로 인한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복수를 담은 ‘손님’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그로인해 뿌리깊이 남아 여전히 사람들을 괴롭히는 빨갱이 콤플렉스를 호러의 발화 요소로 사용한다.

게다가 궁핍한 삶 속에서 관념상 대접은 해야겠는데 여의치 않았기에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일으키는 대상이 되었다는 손님과 손 귀신의 의미까지 곱씹게 한다. 한국의 역사, 문화를 통해 이미 우리 혈관 속에 자리한 두려움을 저릿저릿하게 건드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손님’은 토속적인 호러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면에서 웰 메이드 호러가 될 수 있었을 ‘손님’의 아쉬운 점은 역시나 클라이맥스의 폭발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복수의 화신이 되어 돌아온 우룡으로 인해 피바다가 되는 마을과 사람들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그로 인한 쾌감까지 줄 수 있었다면 더없는 강력추천작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배우 류승룡은 좋은 배우임을 다시금 입증하는 작품이 ‘손님’이기도 하다. 한 얼굴에 희극과 비극을 녹이고 페이소스를 담는데 그게 또 흐릿하지 않고 또렷하다.

그의 타고난 얼굴이자 견뎌낸 시간이 만든 얼굴이 묘하게 배우의 얼굴을 만드는 것 같다. 피리를 부는 웃는 표정에 한 맺힌 피눈물을 담은 광대를 표현하기에 그는 적격이었다.

‘7번방의 선물’의 연장선에 있는 캐릭터 연기이자 CF로 인해 휘발된 게 아닌지 우려됐던 배우의 이미지에 또 하나의 확신을 갖게 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류 배우에게 가지 말아야 할 것은 CF가 아니라 ‘표적’같은 작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