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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드라마-심야식당] 모작을 하면서 진품이고자 했던 의지

 

아베 야로의 만화 ‘심야식당’을 원작으로 한 일본영화 ‘심야식당’이 국내 개봉 2주 만에 관객 10만 명 돌파라는 값진 성과를 냈던 주말에 한국판 드라마 ‘심야식당’의 방영이 시작됐다.

한국 시청자의 정서를 고려해 원작에서 몇몇 요소를 삭제했다는 연출가 황인뢰의 발언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기에 그가 지향한 한국형 ‘심야식당’의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하여 첫날 본방을 시청했다.

결과는 방송 직후 SNS에 쏟아진 싸늘한 혹평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 연출가의 사전 발언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해도 한국판 ‘심야식당’은 원작을 한번이라도 ‘본’(호불호와는 별개) 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실망감을 줄만했다.

도심 속 후미진 공간에 마련된 작은 식당,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되고 특별한 메뉴판도 없이 만들 수 있는 것과 만들어달라는 것을 제공하겠다는 이 밥집이 한국판으로 오면서 너무 넓어졌고 그만큼 여백도 커져버렸다.

그 여백은 아름답지 않은 그저 심심하고 허전한 구멍일 뿐이었다. 허름하고 낡은 원작의 식당이 어딘지 신장개업 식당처럼 바뀐 것은 최악이다. 밥을 먹는 테이블 옆에 유독 눈에 띄는 소품이 하필 금고일 것은 또 뭐람. 거기에 시대착오적인 구식 전화기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소품인지 갸우뚱해졌다.

신인을 발굴하겠다는 연출자의 의지는 언제나 응원해주고 싶지만 시선과 모든 움직임이 연출자의 연기 지도가 있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한 남태현의 연기 시늉을 보는 건 고통이었다.

그 캐릭터가 지닌 사연과 감정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 캐릭터가 줄 수 있는 모든 감동을 거짓으로 만들어버리는 성의 없는 연출이자 시청자 모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연기는 비단 남태현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마스터 역할을 하는 김승우는 원작과는 달리 자꾸만 주인공인 티를 내려는 듯 식당을 찾은 인물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한다.

최재성, 심혜진 같은 경력이 많은 배우들마저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감흥이 덜하게 만든 것은 연기에 대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흐려버린 연출자의 책임이 아닐는지.

2화를 보면서 떠나지 않았던 의문은 저 식당이 ‘심야식당’인지 ‘저녁식당’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조명의 문제일수도 있는데 들어오는 사람들의 기운 또한 심야에 활동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아닌 저녁 7시 무렵 퇴근하고 저녁 식사하러 들어오는 사람들 같았다.

배우지망생이 출연한 드라마의 본방을 보기 위해 모여들어 호들갑을 떠는 설정 자체도 의아하지 않은가. 12시 넘어 본방을 하는 이 ‘심야식당’ 말고 대한민국에서 드라마 본방을 밤 12시~아침 7시 사이에 한 적이 있었던가?

여러모로 아쉬운 소위 한국형 ‘심야식당’을 보자니 영화 ‘베스트 오퍼’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위조품에도 진품의 미덕이 담겨있다.’ 주인공 버질(제프리 러시)은 이 ‘진품의 미덕’이란 창작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황인뢰 연출의 ‘심야식당’은 어쨌든 원작을 바탕으로 다시 만든 위조품이다. 그러나 그것을 고스란히 옮겨와 대사만 한국어로 바꾸는 것을 창작자인 연출가 황인뢰가 원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인장을 여기저기 새겨 넣기 시작했을 것이다.

창작자의 욕망은 인정하고 이해한다. 가뜩이나 한국인의 정서까지 고려해야했던 창작자의 욕망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러나 한국인의 정서를 고민했을 그 때에 원작을 ‘본’ 사람들이 좋아했던 원작의 느낌이 무엇이었는지도 고민하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각오 또한 필요하지 않았을까.

모조품이 줄 수 있는 놀라움의 기본은 모작한 자의 인장이 아니라 진품과의 유사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2015년 7월 6일 작성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