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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미스 줄리] 그 누구도 주인일 수 없었다

 

희곡의 영화화를 종종 본다. 작은 무대, 한정된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촬영과 편집의 기술을 동원해 드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영화로 가져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분명한 이유 중 하나는 영화로도 만들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감정과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리라.

‘미스 줄리’ 역시 스웨덴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희곡이 원작이다. 1890년 세례요한축일(6월24일) 바로 전 날, 줄곧 백야가 지속되는 북아일랜드의 한 남작 집안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종교적 성일을 앞두고 사람들은 흥청망청 파티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 어릴 적 어머니와 사별한 줄리(제시카 차스테인)는 성인이 됐지만 어머니의 부재와 (짐작컨대) 남작인 아버지의 엄격함 속에서 성장한 탓에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 조증과 울증을 오가는 줄리는 자신과 어울릴 수 없는 신분인 하인 존(콜린 패럴)에게 춤을 권하기도 하고 유혹하듯 다가서기도 한다. 존은 이미 그 집의 하녀인 캐서린(사만다 모튼)과 약혼 관계라는 것이 더 문제다.

백야가 지속되어 잠을 설쳤을 것 같은 배경 속에서 성일을 앞두고 뭔가 들뜬 분위기지만 어딘지 불안감이 감도는 남작의 집 안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미스 줄리’를 채운다.

 

 

남작의 딸과 남작의 하인이라는 명백하게 보이는 계급 차이에서 명령과 복종의 주종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실체는 그것보다는 복잡하고 가변적으로 보인다.

줄리와 존이 관계를 맺은 그 시간 후, 부서질 듯 나약한 자존감과 신분상승을 꾀했던 욕망이 드러나며 주종의 관계마저도 뒤바뀌는 듯 보인다. 하녀라는 지위와는 달리 자존감이 강해보이는 캐서린 역시 어릴 적부터 그녀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종교적 가르침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눈에 보이는 계급 사회적 모습은 허울이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 욕망 속에서 그들은 모두 복잡한 주종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세 사람 모두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는 입장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는 낮은 자존감으로 무너지고, 지위가 낮은 자는 욕망 앞에 무릎을 꿇는다.

또한 각자가 자신이 처한 여성, 하인, 창조주의 피조물이라는 울타리가 만든 굴레 안에서 주인 되기를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세 사람이 각자 이동하는 목적지를 교차로 보여주는데 그 목적지로 부르거나 가라고 명령한 주체가 누구인지 상기하면 그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가 2015년의 관객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결코 스스로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캐릭터가 현실의 사람들과 크게 거리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런 것이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의 오프닝에 굳이 문을 놔두고 커다란 창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줄리의 모습은 그녀가 분신처럼 대하는 새장 속 카나리아와 그녀가 다르지 않은 상황임을 읽게 한다. 그런데 그 카나리아를 존이 대하는 방식을 보고나면 이젠 이후에 벌어질 비극까지 결코 돌이킬 수 없음을 짐작하게 한다. 줄리의 드레스 색깔이 짙푸른 색인 것도 그녀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굳이 연극적 형식을 벗어나는 길을 택하지도 않는다. 연극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최소화한 카메라의 동선으로 캐릭터의 섬세한 감정 변화를 더욱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따라서 관객을 영화로 끌어들이는 것도 배우들의 몫이고 연기를 보여줄 기회를 얻는 것도 배우들이다.

오만가지 감정을 표출해내는 줄리 역의 제스카 차스테인은 강함과 약함이 폭발하는 에너지가 참 좋았고, 야비한 듯 유약한 콜린 패럴도 조화로웠다. 사만다 모튼은 비중이 적어보이지만 기회가 왔을 때 폭발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연극에서라면 가장 인상에 남았을 캐릭터가 아닐까 한다.

‘미스 줄리’는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나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처럼 상황에 따른 인물의 심리 변화와 관계의 갈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과 다양한 분석이 나올 수 있는 작품으로 관객에게 보는 맛과 읽는 맛을 선사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