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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샌 안드레아스] 구조될 수 없는 재난 영화

 

 

여름 블록버스터의 시즌이 열렸다. 빼놓지 않고 재난영화 한 편이 기대를 불러모았다. 샌 안드레아스 지각판에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규모 9,9의 유례 없는 지진이 캘리포니아 주를 뒤엎는 예고편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가 예상됐다. 대한민국과 중국에서만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상영된다는 정보도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런데 실제 영화는 도저히 구조될 수 없는 처참한 상태였다. 포스터에 제목보다 크게 들어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라는 카피처럼 영화는 재난으로 영화 속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의 정신까지 무너뜨린다. 작정하고 총체적 난국으로 만든 것 같다고 할까.

이것이 진정 여름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든 재난 영화란 말인가.

영화는 애초에 사람과 감정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국계 배우인 윌 윤 리가 연기하는 '킴'이 후버댐을 뒤엎는 지진 속에서 구하게 되는 소녀와 그 소녀의 엄마를 다루는 방식을 보자. 영화 속에서 처음 보여지는 이 거대한 지진 속에서 캐릭터를 묘사한 것을 보면 앞으로 이 영화가 사람을 영화 속에서 어떻게 다룰지 걱정과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모름지기 재난영화라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애, 휴머니즘을 부각시키고 그것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지탱하는,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것임을 알게 하는 감동 코드를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재난에 의해 무너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영웅을 탄생시키면서까지 그걸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샌 안드레아스’라는 재난 영화의 방향 아니었을까. 영화는 드웨인 존슨을 영웅으로 만드는 데는 충분한 소질을 보이고 성조기를 펄럭이는 엔딩까지 놓치지 않았으나 아쉽게도 사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문제는 주인공 레이(드웨인 존슨) 캐릭터에서도 보인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벼랑에서 떨어진 여인을 구출하는 인명구조요원 레이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구조요원으로서 그의 철저한 직업의식과 능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심각한 재난 상황이 펼쳐지자 그는 사람을 구하는 구조요원으로서가 아니라 아내와 딸을 구해내려는 가장으로만 역할을 한정 짓는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거창하게 보여줬던 구조요원의 사명감은 이유도, 설명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다른 사람을 데려다 앉혀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가령 헬기를 타고 구조가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던 그는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러면서 헬기 창 밖으로 다리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힐끗 보는데 그 표정에 미동 하나 없다. 마치 죽고 죽이는 게임 화면을 본 사람처럼 행동한다.

구조요원으로서 상황에 대해 보고하거나 해결책을 찾으려는 고민의 흔적도 없이 아내가 있는 고층건물로 곧장 향한다. 그렇게 위기의 아내를 구출한 후에도 답은 없긴 마찬가지다. 곧이어 딸의 전화가 걸려오고 딸 역시 고립된 위기에 처해있다. 역시나 아무 고민의 흔적 없이 '딸 구하러 가야지'라고 말하는 남편을 아내는 '역시 내 남편!'이라는 표정으로 웃으며 바라본다.

구조요원으로서 사람들을 구하는 대의가 먼저인가, 딸을 구해 가정을 지키는 일이 먼저인가 딜레마에 빠질 법한 순간을 영화는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영화는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남자가 딸을 구하러 가는 과정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진과 쓰나미를 때맞춰 일으키며 감독은 신과 같은 재주를 부린다.

제 맘대로 지진이며 쓰나미며 영화 속에 퍼붓는 감독, 그러나 한 길 사람 속은 전혀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와중에 사이사이 가족의 아픈 과거가 남긴 트라우마를 털어놓는 드웨인 존슨의 감정 연기는 오글거리기 그지 없고, 모든 것이 허술한 상황 속에서 말도 안 되는 진지한 연기를 혼자 떠맡은 폴 지아마티의 모습은 관객의 입장에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를 웃픈 상황을 선사한다.

총체적 난국, 구조될 희망이 없는 이 영화의 단 하나의 희망이라면 엔드 크레딧에 흐르는 SIA의 노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