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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스틸 앨리스] 여전히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이란

 

 

인간이란 참 오묘한 존재다. 품고 있는 에너지도, 가능성도 그 최소와 최대의 경계를 분간하기 어려운 일들을 보여주는 참으로 오묘한 존재다.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50세에 조기성 알츠하이머가 자신 안에 발병했음을 알게 된 앨리스(줄리안 무어)의 삶을 스크린을 통해 들여다보면서도 이 생각을 하게 됐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앨리스를 여전히 앨리스로 만드는 것일까. 영화가 남기는 단어는 '사랑' 그리고 '의지'였다.

 


기억이란 결국 모두 과거가 남긴 산물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그깟 과거의 산물 따위 없으면 어떻겠는가 싶겠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 지울 수도 없다.

기억이 온전했던 내가 남긴 메시지를 보고 그대로 수행하는 순간마저도 방금 본 메시지를 기억하지 못해 다시 보는 반복을 거듭하는 앨리스의 표정은 너무 건조해 보인다.

지금의 자신을 만든 과거의 수많은 경험과 추억, 사람들과의 관계가 주마등처럼 스쳐갈 법한 순간임에도 그녀에게는 주마등마저 허락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과거가 없는 현재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끔찍하게 정곡을 찌르는 대목이다. 앨리스는 잊히기만 하는 과거의 모든 자신과 단절이 된 채 상실의 기술을 익혀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하지만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얼마나 무섭게 인간을 무너뜨리는지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실상이 현실이 된다.

결국 다시 의지를 말하게 된다. 앨리스의 다짐은 과거의 모든 내가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 질병의 주술에 걸려 허우적대느니 순응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다만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남아있는 현재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앨리스의 담당의는 드문 케이스인 조기성 알츠하이머의 경우 지능이 높은 환자일 경우 악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지만 앨리스는 그 지능이 질병의 상태를 이기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 또한 앨리스가 자신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만든 결과 아니겠는가. 결국 앨리스도 그녀의 의지의 강도를 떠나 질병이 이끄는 대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지만 사랑을 인지하고 되뇌게 만드는 것 또한 그녀의 의지로 보인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누고 공유하는 고귀한 가치,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사랑을 마지막으로 읊조리는 앨리스는 그래서 ‘여전히 앨리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