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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버드맨] 그 날갯짓에 미소 지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버드맨


그 날갯짓에 미소 지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깨달은 자는 날개를 단 듯 자유롭고 행복하다, 마치 새가 되어버린 인간처럼. 왕년에 액션 히어로 '버드맨'을 연기하며 유명세를 떨쳤던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그러나 십여 년 전 영예는 사라지고 이제 새로운 길에서 재기를 꿈꾸며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What we talk when we talk about love>을 연극으로 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달리 연극을 올리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다. 상대 배우는 사고가 나고 대신 들어온 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튼)는 메소드 연기를 펼친다며 술을 퍼 마시고 폭력적인데다 제멋대로 행동한다. 연인이자 함께 연극에 출연하는 로라(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까칠하고, 이제 막 브로드웨이 데뷔를 앞둔 레슬리(나오미 왓츠)는 낮은 자존감으로 괴로워한다. 약물중독으로 재활원까지 다녔던 딸 샘(엠마 스톤)은 아버지와 티격태격 대립한다. 권위있는 연극 평론가 디킨슨(린지 던컨)은 그와 그의 연극이 가치 없다며 막이 오르자마자 죽여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무엇보다 리건을 괴롭히는 것은 그의 내면에서 울리는 '버드맨'의 목소리다. '버드맨'은 리건의 또 다른 자아이자 리건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목소리다.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몇 번의 프리뷰 공연을 거치고 정식 공연을 올리게 된 날, 리건은 마침내 '버드맨'과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듯 대단한 결심을 하게 되고 그것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자유로운 엔딩을 선사한다.

 




 

 



<21그램><바벨><비우티풀>등의 작품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버드맨>으로 마침내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영화가 선보이는 스타일과 이야기는 수상을 납들할 만큼 매력적으로 보인다. 쇼비즈니스가 만든 허상과 허울에 자아가 흔들리며 분열된 듯한 자아의 소리를 듣는 왕년의 스타가 주변의 냉대와 대중의 얄팍한 시선을 통과하며 결국 존재를 인정받고 스스로 존재 의미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는 종국에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리건은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거의 선택은 옳았는지, 그것이 이끈 현재의 자신은 만족스러운지 끊임없이 갈등한다. 내면의 또 다른 자아 같은 '버드맨'의 악마 같은 속삭임은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그런 중에 그가 자신의 존재 가치, 그 본질에 다가가게 만드는 것은 주변인, 특히 그의 딸 샘(엠마 스톤)이다. 샘은 자신의 성장기에 늘 부재했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쌓였지만 어쩌면 유일하게 리건을 이해하고 리건과 같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다. '버드맨'의 소리를 듣고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새처럼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리건. 아버지 리건이 공중에 떠 있는 망상에 젖어있다면 딸 샘은 극장 위 난간처럼 세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기를 반복한다. 약물중독이었던 샘은 '버드맨'의 환청을 듣는 리건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보인다. 리건과 샘, 이 부녀는 서로 통하는 듯 하면서도 상대가 이성적일 땐 흐트러져있고 흐트러져있을 땐 냉철한 자세로 입장을 교환해가며 마치 같은 인물 안에서 대립하는 두 가지 자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헐벗은 채 브로드웨이 거리를 활보하게 된 리건을 향한 대중의 조롱에 오히려 의연하게 대처하는 샘의 모습은 리건이 타인에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존재의 가치를 깨닫도록 지지하는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진다. 마이크(에드워드 노튼)와 늘 대립각을 세우는 리건과 달리 마이크와 소통하는 샘의 모습 역시 마이크와 친밀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리건의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졌다. 결국 리건의 결단에 그를 인정하고 그의 모습에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존재 역시 딸인 샘이다. 샘의 환한 미소로 리건은 '버드맨'이라는 또 다른 자아와 타협점을 찾고 존재를 인정받고 가치를 깨달으며 진정한 날갯짓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인간 내면의 갈등을 주변인과의 관계로 풀어내고 그 흐름을 자유롭고 유연하게 만들어내는 영화의 형식은 관객을 압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컷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유려한 촬영기법과 이 기법을 보완하는 조명과 편집, 시종일관 흐르는 드럼비트의 음악은 완벽하게 압도적이고 독창적인 <버드맨>만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이 스타일을 위해 촬영과 편집을 염두에 둔 세트를 설계하고 배우들의 동선과 편집점을 고려하며 1개월간 사전 연습을 하고 또 1개월 만에 촬영을 완료했다는 것만으로도 만든이의 철두철미한 내공이 느껴진다. 그 안에서 스태프의 감각과 연기자들의 조화가 배어 나옴을 느낄 수 있다. 이미 전작인 <그래비티> 오프닝에 적용했던 원컷원씬 롱테이크(처럼 보이는) 촬영기법인 엘라스틱씬을 통해 관객을 놀라게 했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우주에서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과 거리로 옮겨와 장소와 환경, 배우들을 완벽하게 재단한 듯 시각적인 놀라움을 선사한다. 마치 카메라가 인물 사이를 자유롭게 새처럼 날아다니면서 컷 없이 '원씬원컷'으로 촬영된 것처럼 보이는 연출은 관객마저도 리건의 일상의 호흡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그가 지치고 취해 길에서 잠든 지점에 이르면 그 몸의 무기력함이 전달되는 것 같다. 결국 스테디캠을 짊어지고 인물을 쉼 없이 쫒는 카메라 (감독)의 역할을 고스란히 관객이 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묘한 체험을 하면서 현실과 환각, 판타지를 넘나들며 설득력을 유지한 범위 안에서 경계를 허물어 나가는 확장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완벽하게 이야기를 통제하고 시각적으로도 자유롭게 판을 펼치는 영화인들에게 예술가라는 칭호는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올해 오스카에서 <보이후드><위플래시><이미테이션 게임> 등의 경쟁작을 누르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주요 부문을 수상하게 된 것도 이런 시각적 쾌감과 상상력의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이야기의 완결성이 가져온 결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전형적인 드라마에 상을 주던 모습이 익숙했던 오스카가 예술가의 자유로운 도전에 손을 들어준 이변 아닌 이변으로 <버드맨>의 수상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초반 샘(엠마 스톤)이 뉴욕의 (꽃과 식료품을 함께 파는) 한인마트에서 꽃을 사면서 아빠 리건(마이클 키튼)과 영상통화를 할 때 내뱉은 '꽃에서 젠장 김치냄새 난다'는 대사가 우리나라 뉴스에까지 나오면서 '한국 비하' 논쟁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 

지극히 영화 속 캐릭터에 따른 설정으로 보여지는 장면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각 인물들이 실제 헐리웃 배우와 셀러브리티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비난하고 욕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극 중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배우들에 대해서 비아냥거리듯 언급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대사 그대로에 화를 내야 할 사람들을 굳이 정하라면 오히려 그 배우들이지 '김치'를 먹는 '한국인'들은 아닌 것 같다. 영화를 보면 생기지도 않을 오해일텐데, 여러모로 생트집 잡는 것 같아 좀 어리둥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