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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왓 이프] 진중한 망설임을 담은 로맨틱코미디

 

 

왓 이프

 

진중한 망설임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

 

 

 

 

뉴욕을 밤낮 대화로 물들였던 해리와 샐리, 라디오 사연을 인연으로 결국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는 시애틀의 샘과 뉴욕의 애니, 500일 동안 밀당의 끝을 보여준 탐과 썸머. 세상에 많고 많은 것이 연인들이고 밀당에 썸을 타는 사람들인 것처럼 끊임없이 변주되고 되풀이되어도 끌리는 것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까. 그들은 '우리도 사랑일까' '이렇게 시작해도 되나' '그나 그녀도 나처럼 생각할까'를 두고 밤을 지새워 설레고 격론을 펼치고 울고 웃는다.

<왓 이프>의 월레스(다니엘 래드클리프)와 샨트리(조 카잔) 역시 서로 끌리는 감정이 있지만 이게 정말 사랑일지 확신하지 못한 채 만약 이렇다면, 만약 저렇다면 어쩌나 싶은 망설임을 안은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주인공이다.

 

 

 

 

 

월레스는 의대를 중퇴하고 1년간 두문불출 했다. 같은 의대에 다니던 전 여자친구가 해부학 교수와 바람 피우는 걸 목격한 후 그것이 상처가 된 것이다. 친구의 설득으로 파티에 왔지만 이내 시들해져 냉장고에 붙은 낱말 이어 붙이기나 하던 때 샨트리가 나타난다. 둘의 대화는 뭔가 화학작용을 일으킬 것만 같다. 샨트리에게는 같이 사는 남자친구가 있다. 그럼에도 샨트리는 말이 잘 통하는 월레스와 진짜 친구로 지내고 싶어한다. 샨트리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맥이 풀리긴 했지만 뭔가 인연인 듯 마주치고 끌리는 구석이 있는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월레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공식적인 친구, 소위 사랑과 우정 사이의 그것이 된다.

 

 

 

 

 

실연의 상처를 겪은 남자는 이번엔 상처를 만드는 입장이 될까 조심하고, 남녀의 우정을 믿는 여자는 그 믿음이 혹시 깨지진 않을까 조심한다. 그 깊은 속내가 만든 조심성은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에 망설임을 만들어낸다. 그 망설임을 확신으로 만들어가기까지의 월레스와 샨트리의 과정은 무척이나 고전적이다. 마치 <오만과 편견>류의 19세기 제인 오스틴 소설 속 인물들처럼 고전적인 순수함이 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이들의 망설임을 어떻게든 확신으로 바꾸려고 여러 계획을 세우지만 이들은 끄떡없다. 그 망설임은 요즘 세대 같지 않아 답답하다기보다는 진중해 보인다. 가볍고 일회적인 관계가 수용되는 현재에 그런 진중한 망설임은 미덕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월레스와 샨트리가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장소가 있다. 토론토 컬리지 스트리트에 위치한 로얄극장이다. 그 곳에서 그들은 1987년 작인 로브 라이너 감독의 <프린세스 브라이드>를 본다.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은 영화 속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대신 'As you wish'라고 말하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음 속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는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이야기는 시대 상황만 다를 뿐 <왓 이프>의 두 인물이 겪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As you wish'라는 대사에 대해 말하는 둘을 보면서 관객은 '답정너'처럼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 지 뻔히 짐작할 수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가 주는 그 재미를 기대하면서 보게 된다. 마치 너흰 망설이고 있지만 우린 다 알고 있어 하는 자세로 말이다.  

 

 

 

 

 

영화의 촬영지는 캐나다 토론토다. 샨트리가 월레스에게 건넨 416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는 토론토를 상징하고, CN타워가 보이는 거리와 해변을 거닐고 옛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우연히 조우한다. 영 스트리트의 화려함과 스파다이나 크레센도의 특징적 풍모를 보여주지만 장소를 내세워 뽐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 앞을 걷는다거나 CN타워가 보이는 지붕 위에 올라가 생각하는 장면이 인상적일 정도로 소박하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면서 뉴욕 센트럴 파크에 가보고 싶어하거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고 싶어하거나 <500일의 썸머>를 보면서는 하다못해 IKEA매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왓 이프>는 랜드마크를 보여줄 수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관객이 특정 장소에 의미 부여하게 하지는 않는다. 캐나다 출신으로 역시 토론토를 배경으로 한 사라 폴리의 <우리도 사랑일까> 역시 토론토의 곳곳(이 영화에도 '로얄극장'이 등장함)을 비추고 토론토 아일랜드도 등장하지만 딱히 장소를 뽐내지는 않는다. 이런 소박함이 캐나다 영화()의 정서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로케이션으로 방점을 찍는 것에 주력하지 않는 대신 영화는 월레스와 샨트리를 잇는 중요한 음식을 소개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먹었던 것으로 유명한 '풀스 골드(Fool's Gold Loaf)'가 그것이다. 커다란 프렌치 빵 덩어리에 버터를 발라 살짝 굽고 옆으로 반을 잘라 한 쪽엔 땅콩버터 한 병을 통째로 붓고 다른 한 쪽엔 포도젤리 한 병을 통째로 붓는다. 그리고 베이컨을 구워 그 사이에 잔뜩 넣고 잘라서 먹는 것이다. 영화에선 8인분이라고 설명하는데, 엘비스는 친구들과 이 풀스 골드 22개를 3시간 동안 비행하면서 샴페인, 페리에와 함께 쉼 없이 먹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친구들 초대하고 이 풀스 골드 한번 만들어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최대 8,000kcal까지 나올거라는 게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