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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거인] 성장판에 상처를 내며 거인이 되라 말하는 세상

 

거인

 

성장판에 상처를 내며 거인이 되라 말하는 세상

                

 

 

삶의 무거운 시련이란 나이를 따져가며 오지는 않는다. 삶의 무거운 책임도 때를 가려 부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때로 우린 그것을 간과한다. 이유를 갖다 대며 그 때를 외면하려 한다. 더욱이 그것이 남에게 닥쳤을 때는 최소한의 관심도 기울이려 들지 않는다. 어둠이 어두운 것은 어둠 안에 있는 사람이 제일 잘 알고 그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할 책임도 결국 그 어둠 안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내야만 하는 동정도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거인>의 주인공 영재(최우식)는 가톨릭 재단의 원조를 얻어 운영되는 그룹홈에서 지낸다. 17살 고등학생인 영재는 무능하고 술에 절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창원(김수현)과 그런 집안에서 별다른 방법도 찾지 못하는 어머니가 있는 '구역질 나는' 집을 스스로 떠났다. 그룹홈에서 주변 사람들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면서 견디다가 신학교에 진학하고 신부가 되는 것이 사람 구실하며 살 유일한 수단이라고 여기며 하루하루 버틴다. 그러나 무능한 아버지는 동생인 민재(장유상)까지 그룹홈에 맡기려 든다. 자신도 더 이상 그룹홈에 머물 수 없는 나이가 돼 눈치로 버티며 살 방도를 마련하려 들 때마다 번번이 가족과 주변인들이 불쑥 끼어들어 가로막는다.   

 

 

 

 

 

영재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이 아이의 몸에 밴 눈치보기이다. 그룹홈에서 밥을 먹는 모습은 눈칫밥을 먹는다는 게 뭔지 정확히 보여준다. 저렇게 먹는 밥이 제대로 소화는 될 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목에 깔깔한 밥알이 걸리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룹홈에 방문한 신부와 수녀에게 어떻게 해서든 잘 보여서 자신의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영재의 모습은 눈물겹다. 구김살 없이 제 뜻을 펼치는 법을 배우며 성장해야 할 나이에 눈치를 살피고 남의 비위를 맞춰 근근이 버티는 생존의 법칙을 배운다. 위선을 생존의 법칙으로 배우는 소년, 매 순간 앞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어막을 쳐야 하는 소년에게 세상은 일부러 그의 성장판에 흠집을 내는 거친 칼날처럼 동정도 없이 군다.

 

 

 

 

 

영재는 수시로 그룹홈에 보내진 보급품을 훔친다. '부자들이 쓰다 버린 물건'이라고 표현은 하지만 그걸 가져다 학교에서 팔며 차곡차곡 돈을 모은다. 보급품이 사라지는 것이 발각돼 큰 사단이 일어나지만 영재는 훔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더 이상 누명 씌울 대상이 없음에도 계속되는 절도 행위는 앞날을 편하게 기다릴 수 없는 소년의 절박함이자 소년의 마스터베이션처럼 느껴진다. 구역질 나는 집안을 벗어나 들어온 그룹홈에서의 역시나 구역질 나는 눈치보기로 내부에 쌓인 것을 분출할 수 있는 소년의 마스터베이션은 멈추지 못하는 절도행위로 표현되는 듯 하다.   

 

<거인>은 이제 한고비 넘어가는가 보다 싶은 안도의 순간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고 소년을 벼랑으로 몰고 간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칼을 들고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소년의 절박함이 마음을 쓰리게 긁어댄다. 실제로 집을 나와 그룹홈에서 성장했다는 김태용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하니 그런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에 다시 가슴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와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 그 시기를 거쳐 지금 감독이 되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감독의 모습은 그 불안하고 절망스럽던 시기를 견뎌대며 지금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안도의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사방에서 밀려오는 불안함과 위협을 안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실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여전히 안타까운 현실임을 자각하게 된다. 무관심과 외면으로 동정 없는 세상을 만들어온 것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세상은 소년에게 거인이 되라고 강요하지만 실상은 거인이 되지 못하게 성장판을 칼로 그어대고 있는 꼴 같다.  

 

 

 

 

여전히 우울한 사회와 안쓰러운 청소년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이지만 <거인>은 성폭행과 교내 폭행이 주요한 소재로 다뤄졌던 일련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오늘의 청소년들의 문제와 사회 문제를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영화 시사회에서 관객들에게 '햇반'을 선물하며 감독은 선물의 의미를 설명했다. 영화 속 영재와 소년들은 눈칫밥을 먹는데 밥을 먹는다는 행위가 노동으로 수고롭고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게 편안하게 한 끼 먹으라는 의미에서 밥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활까지 안심할 수 없고 편안할 수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것을 방치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해법에 대한 간절함을 안고 나오게 하는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