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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인터스텔라]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도킹할 수 있는 감동

 

인터스텔라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도킹할 수 있는 감동

 

 

 

판이 완전히 바뀐 가까운 미래가 펼쳐진다. 엔지니어 따윈 이제 필요 없고 환경오염과 식량난에 허덕이며 땅을 일궈 농사짓는 게 가장 생산적인 일처럼 보이는 미래의 세상이 보인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사기극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져 교과서 내용까지 이미 바뀌었고 미국항공우주국 NASA도 해체되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는 가까운 미래이지만 지금과는 판이 완전히 바뀐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 안에서도 인류는 생존을 제1과제로 두고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고 위기를 극복해 인류에 더 나은 미래를 발견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것은 나의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전 인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희망과 절망의 답을 함께 불러온다. <인터스텔라>는 이 질문에 희망의 답을 전하는 쪽이다. 절망스런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지만 소소한 일상이 던져주는 메시지에서 답을 찾아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뿌리를 아버지와 딸의 소통과 가족의 대물림에 두고 있다.

                        

 

 

 

한 때 엔지니어이자 우주항공 파일럿이었던 쿠퍼(매튜 맥커너헤이)는 장인의 집에서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우연히 중력이상 현상을 발견하는 것을 계기로 인류를 구할 책무를 띠고 우주탐사에 나서게 된다. 영화의 시작부터 쿠퍼가 가족과 작별하고 우주로 떠나기 전까지 벌어지는 일들은 일상에 가깝다. 그 사이 벌어지는 이상스런 현상들의 분위기는 일찌감치 이 영화가 어떤 결말을 향해 가고 어떤 차원의 이야기를 할 지 대략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앞서 몇몇 영화들이 이런 이야기를 선보였고 whatculture.com에 올라온 '<인터스텔라>를 이해하기 위해 봐야 할 영화 10 (10 Movies You Must See To Understand Interstellar)'이라는 글에 소개된 영화만으로도 대략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예상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반감시키지는 않는다. 우주 탐사를 시작하면서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압도당하는 황홀함을 선사하면서도 이 영화에 감동하기 위해서 관객이 놓지 말아야 할 것, 집중하고 끝까지 쥐고 가야 할 것이 우주로 떠나기 전의 상황 안에 담겨 있음에 초점을 맞추게 할 뿐이다. 그렇기에 본격적인 우주 탐사가 시작되기 전 상황에 몰입함은 영화의 말미에 몰아칠 감동을 배가할 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자신의 이름을 하필이면 왜 '머피의 법칙'에서 따왔냐고 불만을 호소하는 딸 머피(맥켄지 포이)에게 아빠 쿠퍼는 '머피의 법칙'은 사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사람이 의미 부여하고 제각기 해석을 붙일 뿐 그건 단지 일어날법한 일이 때마침 일어났을 뿐이라는 말이다. 머피의 방에서 일어난, 아빠는 '유령'이라고 불렀던, 기현상도, 방에 불어 닥친 황사먼지로 알게 된 중력이상 현상이 이끈 길도, 우주 탐사를 하면서 내린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도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일 뿐이다. 멀찌감치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면 보이는, 어쩌면 조종도 가능할 그 일들을 평면이 온 세상인 존재는 쉽게 깨달을 도리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보이는 것들에서 찾아낸 것들을 나름의 이유와 근거로 정의 내리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현상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알 수 없는 심령술이나 사이비적 종교관을 지지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의 영역에서는 설명이 불가한 차원의 것들이 분명 존재하기에 그만큼 보이는 것들만이 아닌 정신과 직관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작가인 조나단 놀란이 작품을 위해 물리학 학위를 받고 분야의 정통한 저서를 참고하고 킵 손 같은 분야의 권위자에게 자문을 구하며 웜홀, 블랙홀 등의 물리학적이고 과학적인 우주관을 적용했고 그것을 시각화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이 높고 열띤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영화의 개봉이 불러온 현상이다. 하지만 그런 논의로부터 살짝 벗어나 정신과 직관의 눈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발견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인터스텔라>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인 듯 싶다. '우주 모험-가족 영화'라고 설명이 가능한 픽션으로 <인터스텔라>를 감상하며 물리와 과학적 요소의 현실성에 대한 논의보다는 영화의 감성적 메시지를 온전히 느끼는 것에 집중하는 편을 권하고 싶다.       

'머피의 법칙'처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세상에서 주변의 소소한 것들의 의미, 그것들이 전하려 하는 메시지를 읽으려는 자세와 그것이 이끄는 통찰이야말로 영화 속 머피처럼 우리를 '유레카'라고 외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엔딩을 보면서 독신주의에 대해 생각을 재고했다는 사람이 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현실을 극복하고 자손을 남기고 그로 인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영화를 통해 발견했다고 했다. 최근에 본 <나의 독재자> <카트>같은 한국영화에서도 유독 대물림에 대한 메시지를 읽어내던 요즘, <인터스텔라> 안에도 그 대물림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요소가 있음을 느꼈다. 가족이 더 나은 세상에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전 인류를 향하게 됐고 그 뜻이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처럼 대물림되어 결과물을 만들어낸 모습은 꽤 감동적이다. 게다가 그 시점으로부터 온전히 부모의 세계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설정은 대물림과 인격체의 독립과 성장이라는 의미를 이 영화에서 느끼게 했다. 모든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별 같다. 셀 수 없이 많이 하나같이 빛을 낸다. 그 사람과 사람의 소통, 통함이야말로 별과 별의 통함, '인터스텔라(Interstellar)'가 아닐까.

 

 

 

 

지금껏 공개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 매번 놀라고 매번 감탄하며 좋아했지만 개인적으로 <인터스텔라>가 준 감동이 가장 거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인류를 구원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영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거대하게 복잡한 다층의 플롯을 읽어내는 재미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가족 안에서의 개인의 삶과 행복을 최우선이자 근원으로 둔 사람들이 세상으로, 우주로 나아가는 이 이야기가 취향의 어딘가에 가장 자연스레 도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감동을 이끄는 역할의 한 축을 톡톡히 감당해낸 한스 짐머의 음악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