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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카트]생필품을 담은 카트를 밀며 저항하는 동력,'여성'

 

카트

 

생필품을 담은 카트를 밀며 저항하는 동력, '여성'

 

 

 

<카트>는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티며 일했던 노동자들이 한 순간 계약해지, 해고 통보를 받고 더 이상 참고 넘어갈 수 없는 부조리한 처사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단순히 '이야기'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순전한 픽션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일을 동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관객을 분노하게 하고 눈물짓게 하고 한숨짓게 하는 부분은 실제로 노동자들이 겪었던 모질고 부당한 처사들에 대한 반응이다. 만들어진 이야기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다룬 르뽀를 볼 때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여기서 좋았던 것은 영화가 관객을 선동하며 그들의 주장에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려는 얕은 수를 쓰지 않고 냉철하게 현실을 담아내려 한 흔적이 느껴지는 점이다. 한편 해외로 장기 출장을 갔거나, 이혼 가정이거나, 경제적으로 무능했거나 하는 이유로 아버지가 부재한 가족을 힘겹게 이끌어나가는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보호받지 못하는 이 현실의 벼랑에 몰린 여성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함과 동시에 그 여성으로부터 시작되는 연대와 후세로 이어지는 유전의 힘을 담아낸 것이 이 영화의 개성으로 느껴진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트의 노동자들은 계약해지, 해고에 대한 예고 문자를 받게 된다. 황당한 처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은 이내 이 부당한 처사에 힘을 모아 맞서자며 힘을 모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둡고 우울하지만은 않다. 사측과 공권력, 언론에 의한 폭력에 연대가 휘둘리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그들의 싸움은 (실제로도) 절반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영화는 현실에서 벌어진 그 과정을 참고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데 파업을 계획하고 사측에 맞서 싸우는 인물들에 관객이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냉철한 입장을 취한 듯 하다.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로 주요하게 다뤄지는 캐릭터가 선희(염정아)와 혜미(문정희). 그 캐릭터들이 관객을 설득하도록 큰 소리를 내게 하거나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쯤 되면 내지를 만도 한데 영화는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가령 편의점 주인에게 폭행을 당하고 경찰서에 간 아들 태영(도경수)을 보며 편의점 주인을 대하는 선희의 모습을 좀 더 강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건 캐릭터의 비약이라고 여긴 듯 하다. 캐릭터가 좀 더 오열하거나 좀 더 내지르면 관객을 더 쉽게 흔들 수 있을 거라는 얕은 수를 영화는 정직하게 버린다.  

 

 

 

 

한편 영화의 한 축에는 태영(도경수)과 수경(지우), 민영(김수안)이 연기하는 어린이, 청소년 캐릭터가 있다. 마트 직원들의 파업 이야기만 담아도 됐을 텐데 왜 어린이와 청소년까지 비중 있게 다뤘을까. 아마도 마트 직원인 어른들, 부모들이 겪는 문제가 비단 그들만의 문제만이 아님을 말하는 것 같다. 성인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도 결국 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이미 아이들의 환경인 학교와 가정, 사회 안에도 팽배해 있기에 미성년자 역시 그런 부조리함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하루 종일 TV만 볼 거냐는 질문에 "TV가 하루 종일 나와."라고 대답한다거나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챙기며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은 (돈을 지불하지 않고) 먹어도 돼."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웃음을 유발하는 대사이기도 하지만 이 대사는 일방적으로 주입되거나 강요되는 메시지에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과 지켜져야 할 원칙임에도 '그런다고 죽지 않아'식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기는 태도에 대한 간접적 표현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아이들에게까지 스멀스멀 들어오는 인식과 태도는 결국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저항하지 못하는 존재, 원칙을 어기는 부조리함 앞에서도 융통성을 강요 받는 현실을 고착화하는 것 아니겠는가.

 

 

 

 

 

 

영화는 이런 현실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깨우침을 주는 역할을 여성에게 부여한다. 엄마가 겪었던 것과 유사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아들은 그 부당함 앞에 당당해진 엄마의 모습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한편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대해 당당하지 못했고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소년은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인정하고 목소리를 내는 여자 친구를 통해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 움츠러들고 불만에만 쌓여있던 태영에게 제 목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돌을 집어 던질 수 있었던 수경과 파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선희는 한 단계 앞선 캐릭터로 읽힌다. 이는 남성과 부성이 부재하거나 무능한 가정과 사회 안에서 여성과 모성이 그 역할까지 담당하게 되는 모습처럼 보였다. 자타에 의해 '권위'를 얻고 군림했던 가정과 사회, 국가 안에서 무능하거나 부패한 남성의 자리는 한편 여성을 고된 상황에 처하게 했고 여성 스스로 강인하게 진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처럼 여성은 스스로 연대하며 남성이 부재한 자리의 남성의 역할까지 해내며 바로잡으려 한다. 그런 그들의 움직임은 자식 세대에까지 깨우침을 전하며 유전의 주체로서 기능하는 것 같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담아내며 의미와 가치를 지닌 작품이지만 만듦새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좀 더 세련되게 만들어질 수는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파업을 결정하고 마트를 점거한 첫날 서로를 소개하는 시퀀스 같은 경우 유일하게 메인 캐릭터가 아닌 인물들의 사정을 담아낸 시퀀스인데 결과적으로 모든 인물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데 살짝 떠보기만 한 것 같은 미진함과 그 시퀀스 자체가 진부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측의 입장이 시종 단조롭게 그려진 것도 영화를 입체적으로 보기에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련되지 못한 만듦새에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영화는 몇몇 장면 눈이 번쩍 띌 정도의 명장면이 있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마트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카트에 쌀포대와 생수 같은 생필품을 담고 물대포에 저항하며 돌진하는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한 강렬한 장면이다. 생필품처럼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인권을 무시하고 부당한 처사로 일관하는 자들을 향한 돌격에 사용한 도구로서 쌀포대와 생수를 담은 카트라니, 그 한 장면에 이 영화의 모든 메시지가 담겨있다고도 할 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