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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세상 모든 부부에게 여전히 유효한 결혼 이야기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세상 모든 부부에게 여전히 유효한 결혼 이야기

 

 

 

이명세 감독, 최진실, 박중훈 주연의 1990년 작품이 24년 만에 리메이크 됐다. 이제 연애 기간을 접고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은 영민(조정석)이 미영(신민아)에게 청혼하는, 변함없이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오프닝을 시작으로 찬란하지만 험난한 결혼 일지가 시작된다.

임찬상 감독의 2014년 작품은 원작을 추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무리수 두지 않은 포근한 선물 같다. 동일한 맥락의 오프닝 시퀀스 위로 '워싱턴 스퀘어'가 흘러나올 땐 원작에 대한 향수로 마음이 울컥해진다. 옴니버스처럼 소제목으로 이야기를 구성한 것과 고스란히 옮겨온 중국집 시퀀스, 뿌연 유리창에 손글씨로 메시지를 담은 것까지 소박하게 옮겨왔다.

한편 마치 연극처럼 관객을 향해 말을 하고 말 풍선을 이용하여 속마음을 전달했던 방식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는 설정으로 옮겨왔다. 달라진 소통의 도구를 반영한 것임과 동시에 수시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소셜 미디어 덕에 혼자 조용히 독백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실태의 반영처럼 보인다.

                     

 

 

 

1990년 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프로포즈 장면

 

2014년 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프로포즈 장면

 

 

 

노랑과 스카이 블루

 

 

원작의 상징색은 노랑이었다. 노랑은 가을의 절정에 물든 은행잎처럼 스크린 안에 자리했다. 은행잎은 이제 땅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치이며 소멸하는 일만 남았다.

리메이크작의 상징색은 스카이블루다. 흩날리는 벚꽃과 스카이블루는 싱그러운 봄의 느낌이다. 맑고 깨끗하지만 이제 때묻어 색이 바랠 일만 남았다.

원작의 노랑도, 리메이크작의 스카이블루도 모두 보기에 너무 좋은 한창 때의 빛깔이지만 그 한때를 지나면 처음의 아름다움이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영화는 마치 결혼도 그러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처음엔 누가 봐도 아름답고 생기 넘치지만 갈수록 시들해지는 것 같고 만날 다투기만 하면서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이란 백 번 싸운다면 또 백 번 풀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칼로 물 배기라는 부부싸움에 대한 정의는 유감없이 옳다. 영화 속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결국 부부싸움은 칼로 물 배기라는 메시지를 떠올리게 한다'신혼 집들이 때 받은 키친 타월을 다 썼다면 그건 신혼이 끝났다는 뜻'이라는 친구의 대사처럼 신혼의 알콩달콩함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결혼은 스스로 해법을 찾아낸다. 이 영화가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꿈을 여전히 꾸게 만드는 것 역시 그런 점 때문이다. 

그러니 노랑이든 스카이블루든 한때의 아름다움을 평생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찬란했던 그 한때를 추억하며 그것을 에너지 삼기에는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달 수 있다. 은행잎이 땅에 떨어지고 벚꽃잎이 땅에 떨어진대도 그 아름다움의 기억을 잊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 아름다움이 한순간의 선물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의 가치는 영원한 것이리라. 결혼생활이라는 것도 그런 아름다움에 빗댈 수 있음이 24년의 간격을 지닌 리메이크작에도 여전히 투영된 것 같다.

 

 

 

 

 

 

 

 

원작으로부터 24년이 지나서 영화가 어떻게 달라진 시대의 결혼 풍속과 인간 관계를 담아낼까 궁금했다. 결혼 적령기라 칭하는 연령대도 높아졌고 이혼 빈도도 높아졌다. 일부의 모습이긴 하지만 부부가 결혼 서약은 잊은 듯 서로 섹스 파트너를 두는 경우도 있고, 비밀리에 또는 용인 하에 맞바람을 피우는 경우도 있는 세상이다. 영화는 이런 시대의 과한 모양을 무리하게 반영하지는 않았다. 원작의 설정과 인간 관계도를 가급적 훼손하지 않고 가져오면서 조금 더 현실적인 양념을 치는 선택을 한 것 같다. 새삼스레 극단적 결혼 생활의 이야기를 심어 파격적인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원작에 충실한 리메이크를 한 결과물 같다.

 

 

 

원작이 개봉했을 때 중학생이었고 대략 고등학생이 되어서 원작을 처음 봤던 기억이 있다. 미성년자의 입장에서 본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주변에 기혼자가 더 많아진 입장에서 본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감상에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이 리메이크의 방향성을 짐작하게 한다. 두 영화는 여전히 결혼이라는 게 즐거움만으로 가득차지 않고 험난한 길임을 느끼게 하고 단맛이 아닌 쓴맛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동시에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그 험난한 과정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힘, 다시금 서로 기대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두 영화 모두 결혼에, 함께 산다는 것에 장점이 있음을 꿈꾸게 한다.

 

 

 

 

 

 

리메이크 작으로서 수시로 뭉클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알콩달콩 다투다가도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는 이야기에서 뭉클해질 뿐만 아니라 원작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을 대할 때 뭉클해진다. 특히 배우 전무송의 등장은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지점이다. 원작에선 영민이 일하는 출판사 편집장으로 등장했던 전무송은 리메이크작에서 시를 쓰는 영민의 멘토 역할을 하게 되는 노년의 시인으로 등장한다. 그의 너무나도 인자한 연기 톤은 그 자체만으로도 뭉클하게 만들었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의 연결고리 역할로 배우 전무송은 빛이 났다.

 

 

 

물론 리메이크작을 보면서 가장 생각나는 배우는 최진실과 박중훈이다. 원작에서 그들이 연기한 미영과 영민은 그 자체로 아우라가 있기에 리메이크작에서 신민아와 조정석이 그 아우라를 뛰어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애초에 신민아와 조정석도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고 발휘하며 연기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을까. 최진실과 박중훈의 연기는 이명세 감독의 독창적이고 독특한 컬러를 입고 그들만의 넘볼 수 없는 아우라를 만들었으니 이걸 능가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하다는 생각이 든다.

리메이크작이 개봉하면서 원작의 감독, 배우와 함께 하는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으면 참 좋은 분위기였겠다는 생각에 이르며 당연히 마음 속에 남는 아쉬움은 배우 최진실이다. 영화의 엔드 크레딧에도 '고 최진실을 기리며...'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2008 10 2일 세상을 떠난 배우 최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은 새단장을 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볼 때 떨칠 수 없는 감정이 될 것이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에 모두 사용된 The Village Stompers의 'Washington Squ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