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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메이즈 러너] '나대지 말라'는 세상을 향한 에너지를 보다

 

메이즈 러너

 

'나대지 말라'는 세상을 향한 에너지를 보다

 

 

폐소공포증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미로다. 예전에 놀이공원에 있는 미로에 들어갔을 때, 분명 즐기라고 마련된 공간이 숨막히게 했던 기억이 있다. 2미터 남짓의 거울 벽으로 둘러싼 단순한 미로가 놓여진 전시회에서도 현기증이 일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속 눈 덮인 미로 숲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도, <비밀의 정원>에 등장하는 고풍스러운 미로 숲도 보는 내내 숨막히게 했다.

<메이즈 러너>는 그런 내게 남다른 압박감을 줄 것이 예상되는 영화였다. 그러나 어차피 미로를 벗어나게 되는 이야기일 것이기에 그 모험이 줄 쾌감이 기대됐고, 미로를 벗어나는 순간 드러날 비밀의 정체가 궁금했다. 무엇보다 미로를 벗어나려고 달리는 인물들이 10대 청소년이라는 점이 흥미를 자극했다. 그들의 에너지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더불어 현재 우리 사회를 뜨겁게 하고 있는 문제들에 적용해 보게 하는 에너지였다.

 

 

 

 

 

 

<메이즈 러너>의 아이들을 둘러싼 단단한 미로는 역시나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였다. 한 달에 한 명씩 기억을 삭제 당하고 이유도 모른 채 박스라는 승강 장치에 실려 미로가 사방을 가로막은 '글레이드'라는 공간에 아이들이 들어온 지도 3년이 지났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각자 생존법을 터득하며 '위키드(W.C.K.D)'라는 알 수 없는 이름으로 주어진 것을 활용해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매일 낮 시간을 활용해 미로 속을 뛰어다니며 미로를 벗어날 해법을 찾는 '러너'들이 있다. 러너의 리더 격인 민호(이기홍)와 글레이드에 가장 처음 실려온 리더 알비(에멜 아민)가 그들이다.

이제 막 글레이드에 들어온 신참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는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투철한, 또는 오지랖의 넓이가 남다른 인물이다. 들어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글레이드 안에 있는 어떤 아이들보다 강한 에너지를 뽐낸다. 어둠이 진 후에는, 특히 '러너'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면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미로 안으로 감히 뛰어들어간다. 그 누구도 이겨내리라 상상도 하지 못한 미로 속 괴물 '그리버'에 대적하고 동료를 구하기 위해 용기까지 불태운다. 이런 토마스의 활약에 글레이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미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다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를 당기는 역할을 한다.

물론 모두가 이런 에너지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갤리(윌 폴터)는 글레이드 안에서 괴물 그리버와 대립하지 않고 나름대로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했던 안정을 제멋대로 깨버렸다며 토마스를 비난한다. 글레이드의 균형을 깨고 헛된 희망을 품게 한다며 토마스를 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스에 실려온 최초의 소녀 트리사(카야 스코델라리오)가 글레이드로 보내진 마지막 인물임에도 여전히 모든 것이 미궁 속인 것은 갤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도전적으로 답답한 현재를 벗어나 돌파하려는 토마스와 답답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평화만이 유일한 답이라며 안주하려는 갤리는 영화 속 갈등의 두 축이다. 이 두 축을 보면서 최근 아파트 난방비 문제를 제기하며 폭행 시비에 휘말린 배우와 그런 배우의 행보에 '나대지 말라'며 훈수를 둔 가수가 떠올랐다. 처음엔 누구의 지지도 얻지 못했으나 용기와 도전정신으로 미로를 탈출하는 행보에 동조자를 얻는 토마스의 모습에선 배우 김부선의 모습이 보였고, 밖으로 나갈 수 없고 행동이 제한된 미로 안이 답답한 건 자신도 잘 알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답을 찾지 못했고 나름대로 평온을 유지하는 방식을 찾은 무리의 균형을 깨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갤리의 모습에선 가수 방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뿐이랴. 6개월이 다 되도록 오로지 진상규명만을 외치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마땅한 해법도 찾지도 않고 진상규명도 회피하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정치세력의 모습도 고스란히 그 안에 담겨있었다.   

토마스는 민호와 뉴트(토마스 생스터), (블레이크 쿠퍼등의 지지를 얻어 과감히 미로 속으로 뛰어들어 닫힌 문을 연다. 강하게 반대했으나 기어이 뒤를 밟은 갤리는 다시 한 번 대립한다. 문제 상황을 정면 돌파하며 해법을 찾으려는 자와 문제인 건 알지만 현재의 안락을 방해하지 말고 나대지 말라고 말리는 자 중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한 발짝 나아가는 사람은 분명 전자이다. 지나온 역사를 언급할 것도 없이 현실을 바라보더라도 그건 자명하다. 다만 전자의 경우 갈 길이 험난한 것 역시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안다. 토마스 같은 '오지랖'과 김부선 같은 '나댐'은 이 사회에 필요한 변화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3권의 소설로 구성된 제임스 대시너의 원작 소설 1권을 영화로 옮겼으니 이제 시리즈의 첫발을 내딛은 영화 <메이즈 러너>는 아직 이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무엇이고, 위키드(W.C.K.D)는 무엇이며, 왜 아이들을 시험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채 아이들이 처했던 것처럼 관객을 미로 안으로 데려다 넣었기에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많은 의문이 남은 채 어리둥절하다. 미로 속을 뛰어다니며 괴물 그리버와 대결했던 장면들이 모험 액션 영화의 긴장감을 느끼게는 했지만 물음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답답한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게 뻔한 걸 알면서도 이 영화를 선택하고 극장으로 들어갔던 내가 이 아이들을 믿었던 마음에 실망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에 처한 문제를 제기하고 해법을 찾으려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토마스와 그에 동조하는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 '나대지 말라'고 말하는 갤리에 굴복하지 않고 달려나가는 그 에너지가 반가웠다.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요구는 현재 전세계의 공통된 요구로 보인다. 세상으로 나가기 전 다듬어지는 청소년들의 도전기이자 수난기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 만들어져 호응을 얻는 것은 이 이야기의 설정이 이 세상을 고스란히 비추며 그 요구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답이 내뿜는 에너지를 받고 다시 세상을 향해 서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 요소가 아닐까.

 

*이제 한 단계를 벗어난 듯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을 품게 만드는 미로 속 아이들은 정확히 1년 뒤인 2015 9월에 두 번째 이야기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