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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야간비행] 날아가야 하는데 사방은 캄캄한 밤인 현실

 

 

야간비행

 

날아가야 하는데 사방은 캄캄한 밤인 현실

 

 

 

이제 막 자기 생긴 대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시작할 때인데 사방은 캄캄한 밤이다. 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가까스로 날개를 비벼 빛을 내보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방해 받는다. 함께 날아보자며 손잡은 친구에게도 다가가 손 놓고 떨어지라고 발목을 붙든다.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은 한창 자기 방식과 자기 길을 찾아 성장해나갈 시기에 놓인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제 막 날개가 돋아 그걸 펴고 날아가려는 아이들은 이미 만들어진 사회의 틀과 시선으로 인해 좌절하고 상처 받는다. 기성의 세상이 판박이 된 아이들의 세상도 자본과 권력에 의해 계급이 나뉜다. 제 힘으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부모가 가진 힘에 좌우되기도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 마음을 나누는 것도 차단하라고 강요 받는다. 주류의 선 위에 있지 않으면 내쳐지는 차별과 폭력의 논리가 아이들의 세계에도 스며든다.

 

 

 

 

중학생 때부터 친구 관계였던 용주(곽시양), 기웅(이재준), 기택(최준하). 그러나 중학교 때의 한 사건 이후로 기웅이는 무리에서 이탈했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기웅이는 일진이 되었고, 기택이는 일진들에 시달리는 일명 '펀치머신'이 되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한 용주는 서울대 진학에 대한 기대를 받는데, 성적으로 용주에 미치지 못하지만 부유한 부모의 힘을 믿고 일진에 기생하는 성진(김창환)의 은근한 견제도 받는다. 왕따를 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위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지만  "친구 사귈 시간이 어딨어. 공부나 해라" 하는 선생님의 답은 용주를 좌절시킨다.

기웅을 향한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용주는 방황하는 기웅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더 다가가려고 한다. 그러던 중 학교에 용주의 성 정체성이 아우팅 되고, 우등생이었기에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해나가던 용주의 일상은 온갖 괴롭힘과 멸시, 폭력을 당해야 하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친구가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잖아."

 

 

<말죽거리 잔혹사><파수꾼><명왕성>, 드라마 <학교2013> 등 배경이 된 시기에 상관없이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은 당장 성인 사회에 적용해도 무리 없을 이야기들을 담는다. 고등학생이라는 시기가 허물을 벗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성장해나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 때의 경험이 자존감의 크기, 가치관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것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학교라는 공간과 10대라는 연령이 결코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완벽한 보호막이 되지 못함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때이기도 하니 학교와 학교 밖 사회가 다르지 않게 보인다. 치열한 경쟁 안에 놓인 상태, 남들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가야 하는 기성 세계의 모습이 여과 없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스며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자기를 둘러싼 환경 때문에 외로움의 크기는 커진다. 기대고 의지할 자기 편에 목말라한다. 그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남은 외로움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리고 아프다.

 

 

 

 

또래집단과 어른들의 사회로부터 느끼는 소외감, 박탈감, 고립감이 만든 외로움이 아이들을 극단적인 선택과 판단에 이르게 만든다. 그 모든 것이 폭발하는 엔딩 시퀀스는 관객의 마음을 요동치게 할 것이다. 학교를 떠나야만 하는 아이는 결국 사회 안에서도 살 곳을 찾아 피하고 또 피해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살아갈 것이다. 구석으로 내몰리는 참으로 암담한 현실인데 그런 열악함 속에서도 서로 기댈 곳을 찾고, 외로움을 호소하며 눈물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엔 과거로부터 해결되지 못한 채 마음 속에 아직 남아있는 '미결감'이 작동해 관객들의 마음도 울릴 것이다.

 

 

 

 

<야간비행>은 동성애 성향의 주인공을 등장시키지만 퀴어 영화로 국한할 수 없고,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모두에게 유효한 이야기를 다룬다.

끌리는 상대에 대한 호감을 단순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을 꼼꼼하게 짚어내  관객이 봐야 할 세상을 확장한다. 미혼모로 용주를 낳고 키우고 있는 용주의 엄마(박미현),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다 해고 돼 불법해고 복직운동을 벌이다 수배자가 된 기웅의 아빠(정인기)의 삶까지 비중 있게 다룬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느라 방만하게 흐른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으나 오히려 빠르지 않은 호흡으로 꾹꾹 눌러 담아낸 모습들이 주인공인 아이들이 처한 학교 외의 상황을 설명하며 사방으로 치이고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위태한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요소로 읽혀졌다.

 

 

 

 

 

내내 떠오를만한 장소의 활용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용주네 집 담장 시퀀스들은 꿈에도 나올 듯한 멋지고 뭉클한 장면이고 갈대습지공원에서 촬영된 장면도 외로운 아이들을 다독이는 구실을 하는 그림처럼 예쁜 장면이다.

 

활용한 소품과 대사, 관계의 설정 등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며 읽고 싶게 만드는 요소도 많은데 몇 가지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단추

용주에게 기웅은 자신을 채워주길 바라는, 자신이 채워주길 바라는 첫 단추 같은 존재다. 기웅의 셔츠 첫 단추를 가져오고 그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토하는 아이들

기웅은 용주의 집에서 피자를 먹다가 용주가 내민 과거 사진을 보면서 과거 자신의 모습, 예전 그들의 관계가 떠오르자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폭력을 휘두르며 용주의 집을 빠져 나온다. 그러나 곧 거리에서 토한다.

용주는 "이 학급에 동성애자가 있다" "더럽다, 조심해라" "교회에 가서 기도해라" 라고 막말을 하는 선생과 믿었던 친구마저도 "더럽다"고 하는 말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려다가  자전거 앞에서 토해버린다.

영화 속 동성애자인 용주의 후배 준우(이익준)는 이성애자에게 감정을 표현했을 때 상대방이 거부감을 갖고 반응하는 것을 '토한다'로 표현한다. 그런데 기웅과 용주가 토하는 장면은 그런 거부감의 표현과는 조금 다르게 이해된다. 이들이 토하는 장면은 거부감 보다는 내면에 품고 있는 생각, 감정 등을 표현하지 못한 채 억누르고 참았던 것이 참아지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기웅이는 용주를 향한 우정, 아님 그 이상의 의지하고픈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억누르다 표출되는 것으로, 용주는 '더럽다'는 주변 반응에 떳떳하게 대항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채 눌러버렸던 감정이 표출되는 것으로 토하는 것처럼 보인다. 표현하지 못한 것은 안에 쌓여 썩고 병들게 하는데 아이들은 그걸 견디지 못하고 토하는 것으로 분출한다.  

 

-운동화

기웅에게 운동화는 관계에서 중요한 도구가 된다. 처음 용주가 기웅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신발을 밟으면서다. 용주는 기웅이 중학생 때 매맞은 후 떠날 때 운동장에 벗겨진 채로 있던 운동화를 가져가 간직한다. 후에 아버지를 찾아간 기웅에게 아버지가 건네는 선물 또한 운동화다. 방황하고 정착하지 못하는 기웅에게 운동화는 의지할 만한 또는 정착할 만한 장소와 사람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  

 

- "네가 먼저 배신했잖아."

기택과 성진은 자신의 배신 행위와 폭력 행위에 대해 변명하기 위해 "네가 먼저 배신했잖아"라고 외친다. 실제로 아이들은 스스로의 행동, 복수의 원인으로 타인이 자신을 외면하거나 무시한 행동, 그것을 배신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파수꾼>에서 "그래, 친구야. 네가 최고다." 라는 친구의 인정을 그리워하고 역시나 어긋나며 극단적인 결정에 이르렀던 아이들이 함께 생각난다.

 

 

 

 

-야간비행

야간 비행은 위험하지만 야간에 비행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게 이 현실이다.

영화 속에서 용주와 준우의 아지트인 문 닫은 게이 클럽의 명패에 '야간비행'이라고 써있다. 어쩌면 앞으로 용주와 기웅이 버텨나가야 할 둥지도 이 '야간비행'같은 비밀스런 아지트가 되지 않을까.  

 

 

 

 

-'여기에도 게이가 산다.'

 “LGBT,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 (L:레즈비언 G:게이 B:바이섹슈얼 T:트랜스젠더)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

이 문구는 2012 12월 초, 마포구에 거주하는 성소수자 모임인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가 설치하려고 했으나 마포구로부터 게시를 금지 당했던 현수막에 적힌 문구라고 한다. 이송희일 감독은 그 일을 떠올리며 학교에서 내쳐진 아이들이 학교 벽에 낙서하는 문구로 '여기에도 게이가 산다'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담벼락

용주의 집 담벼락을 넘고 그곳에서 만나는 장면은 영화 속 아주 예쁘고 아련한 장면이다. 물리적 담장을 넘고 그 곳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얼었던 둘의 관계가 녹아 내린다. 담벼락은 그야말로 마음 속 단단한 벽의 상징물 같다.  

 

-사진과 카메라

용주는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삼는다.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매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용주의 캐릭터를 드러내고 동시에 영화의 클라이맥스에도 유효한 소품으로 사용된다.

사적인 기록은 추억이 되지만 그 기록물을 왜곡하고 악용할 경우 사회악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자전거

<E.T>에서 소년들이 타고 도망치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자전거처럼 <야간비행>에서도 아이들을 괴롭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게 돕는 수단이 된다. 용주와 기웅이 갈대습지공원으로 향할 때 뻥 뚫린 도로 위를 자전거로 달리던 모습의 자유로움은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처럼 보였다.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

용주의 엄마는 미혼모로 홀로 용주를 키웠다. 마치 자매처럼, 모녀처럼 술술 대화를 나누는 모자를 보고 있자면 저런 어머니이기에 용주 같은 캐릭터가 가능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투쟁을 하다가 해고되어 복직 투쟁을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부재를 근근이 채워나가는 어머니와 살고 있는 기웅의 삶은 위태롭다. 아버지의 삶이 자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기에 고통 속에 원망하는 마음이 있지만 속으로는 아버지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크고 그것이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기에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그 마음의 상처를 녹일 대상이 절실하고 그래서 방황을 했다면 용주는 기웅의 곁에서 큰 힘이 되어줄 한줄기 빛 같은 희망이다.

 

 

-음악

용주와 기웅이가 중학생 시절 버스킹 공연을 하는 거리에서 처음 만났던 장면과 엔드 크레딧에 Buskers 'If I Ruled The World'가 흐른다. 가사가 느끼게 하는 것과 영화의 메시지가 잘 어울리는 선곡이다.

 

 

 

 

만약 내가 세상을 결정할 수 있다면 매일 아침이 봄의 첫 날이게 할거야

모두가 마음 속에 부르고 싶은 새 노래를 품게 할거고

우리는 매일 아침 기쁨의 노래를 부를 거야

 

만약 내가 세상을 결정할 수 있다면 모두가 새처럼 자유로울 거야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거고

매일매일이 소중하게 느껴질 거야

 

나의 세상은 우리가 그런 꿈을 엮어 나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될 거야

나의 세상은 달빛에 비치는 달 속 남자처럼 환하게 웃음짓게 될 거야

 

만약 내가 세상을 결정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이 자신의 친구라고 모두가 말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