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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족구왕] 청춘, 그냥 족구 하게 해주세요!

 

족구왕

 

청춘, 그냥 족구 하게 해주세요!

 

 

청춘은 무엇인가?

매스미디어가 팔기 위해 만드는 콘텐츠는 청춘의 일면을 잡아내 과장하고 몰아가며 청춘이 어떠하다는 정의를 내린다. 그 콘텐츠를 접하는 청춘들은 저들이 말하는 청춘이 청춘인가 보다 하면서 그 이미지로 조합된 옷을 입는다. 만들어진 이미지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청춘이라는 허상을 만든다. 연애나 섹스를 고민하는 '마녀사냥'의 그림자와 취업준비에 치이는 '취업 뽀개기'의 그림자만 청춘의 모습이라며 둥둥 떠다니는데 나는 그것이 실체와 본질이 실종된 껍데기라고 종종 느낀다. 지나왔던 나의 20대에도 그러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에 더욱 그러하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청춘을 정의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그 말들은 정작 청춘들 앞에서 실소가 터지게 만들거나 냉소하게 만든다. '당신들이 지금 청춘을 알아?'라는 반응이 느껴진다. 인생의 한 순간이기에 다수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시기'이지만 각자 삶의 개별성을 파악하지 않고 함부로 뭉뚱그려 정의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라고 입을 모아 주장할 수 있는 한가지 말은 있을 것 같다. '원 없이 즐겨라'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영화 <족구왕> 20대 초중반의 청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원 없이, 후회 없이 그 아름다운 시기를 즐기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청춘 영화다. 활기차고 쾌활하고 명랑하고 씩씩하고 패기 넘치는, 하지만 이제 막 성인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허덕이며 준비해 나가느라 고되 보이는, 청춘의 시기에 족구 하고 있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려낸다.

20대 초중반을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공감과 파이팅 넘치는 기운을, 이미 그 시기를 지나 살고 있는 청춘 외인들에게는 지난 시간에 대한 애환과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족구왕>은 울리고 웃기며 105분을 통통 튀어나간다.

 

 

 

 

홍만섭(안재홍)은 막 제대하고 바로 복학했다. 싱그러운 봄의 기운이 넘치는 캠퍼스에서 복학생은 늙수그레한 천덕꾸러기다. 만섭이 느끼는 캠퍼스의 가장 큰 변화는 족구장이 테니스장으로 돌변한 것이다. 당장 학교에 족구장 부활을 건의하지만 족구는 복학생의 처지처럼 찬밥 신세다. 그럼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족구고 '좋아하는 것을 남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감추고 사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만섭은 족구장 건립 서명운동을 벌이기에 이른다. 우연히 학교 홍보 모델인 안나(황승언)를 만나고 첫 눈에 반한 만섭은 안나의 곁에 늘 붙어 다니는 역시 학교 홍보 모델이자 전직 국대 축구선수인 강민(정우식)과 족구 대결을 펼치게 된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겨버린 만섭. 그것이 일대 화제의 사건이 되고 그것을 계기로 족구 하는 청춘의 이야기가 팔팔하게 펼쳐지기 시작한다.

 

 

 

 

족구가 뭐길래 만섭과 친구들은 족구에 열중하는 걸까. 만섭은 기숙사 선배의 '공무원 시험 준비하라'는 잔소리에 눈도 꿈쩍하지 않고 자신은 족구가 좋고,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취업과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현실의 즐거움을 헌납한 학생들과 달리 만섭은 족구와 짝사랑하는 안나를 향한 구애에 더욱 집중한다. 여기서 족구는 일종의 저항이자 일탈이며 자유이다. 모두 누릴 수 있는 것이지만 두려움과 망설임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의 상징 같다. 총장과 이사장이 재학생들보다 족구 하는 것에 호의적인 것도 어찌 보면 현재 세대가 망설이며 놓치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이미 그 세대를 지난 세대들이 더 잘 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지금 충분히 누릴 수 있음에도 망설임으로 주저하며 누리지 못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대표하는 상징이 '족구'.

 

 

 

 

족구를 하는 만섭은 행복해 보인다. 밀린 학자금 대출금을 갚지 못해 학기 등록도 하지 못하고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피곤하고 빈곤한 일상이지만 그런 일상이 만섭의 행복을 침해하지 못한다. 만섭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섭은 망설이다 놓치고 마는 것, 하지 못해 훗날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는 인생론을 펼친다. 지금 그에게 절실하게 집중할 것은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에게 있어 '재미있잖아요' 이상의 설명을 할 수도 없는 족구인 것이다. 그가 이런 인생관을 갖게 된 '계기'가 밝혀지면서 만섭이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이유를 더욱 더 이해할 수 있다. 그 장면은 감정적으로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족구 하는 만섭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점점 학내에 족구 하는 열풍이 부는데 이는 현재 청춘을 옥죄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족구를 하며 땀을 흘리고 정정당당하게 대결하고 승부를 받아들이는 올바른 가치관은 청춘 그 자체를 빛나게 한다. 사랑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것,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표현하는 모습은 모두 족구 하기 시작한 이후 자유로워진 청춘에게서 쏟아져 나온다.   

 

 

 

최근 개봉한 <비긴 어게인>의 테마곡인 'Lost Stars'의 가사에도 나오는 조지 버나드 쇼의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이 의미하는 것처럼 청춘은 청춘이 주는 경험에 감사할 줄 모르고 그것을 낭비한다. 그래서 청춘에게 청춘을 주기엔 아깝다는 것이리라. 그만큼 청춘이 그 시기를 진정 누리고 즐기며 사는지에 대해서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적어도 <족구왕>의 만섭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청춘을 낭비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 같진 않다. 청춘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뛰고 넘어져도 또 뛰는 만섭의 모습은 지금 청춘에게나 이미 지난 청춘에게나 감동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학내 방송을 통해 교내에 울리는 시 두 편 또한 즐길 가치가 있는 청춘의 의미를 일깨운다. 시인 문병란의 <젊음>과 시인 윤준경의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은 특별 출연자(?)의 목소리를 통해 교내에, 극장에 울려퍼진다. (특별 출연자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 가능하다)

 

청춘을 말하고 담아내면서 웃음과 눈물, 감동과 용기를 전해주는 유쾌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지닌 영화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87년작 이규형 감독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이후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다. 영화를 너무 안 봐서이거나 기억을 못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청춘을 이런 톤으로 잡아낸 작품도 드물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다.

 

 

 

 

<족구왕> 2012년 개봉한 <1999, 면회>의 엔드 크레딧 이후 쿠키처럼 붙은 '페이크 트레일러'로 공개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피구왕 통키'도 아니고 '소림축구'도 아닌 저 '족구왕'은 무엇인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독립영화집단인 '광화문 시네마'의 간단한 아이디어와 농담 같은 실행으로 시작한 이 기획은 2013년 완성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고 열띤 반응을 얻으며 드디어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영화엔 <1999, 면회>를 봐서 주인공 3인방을 아는 사람들과 감독 우문기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 크게 발견될만한 재미있는 요소를 품고 있다. 온몸덩어리(?)를 다 던지며 매력을 발산하는 만섭 역의 안재홍 배우는 물론이며 함께 족구 3인방을 구성하는 황미영, 강봉성 배우의 연기는 시종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족구하는 복학생 이야기'라거나 '뻔한 스포츠 소재 영화'라거나 '여자 관객들이 보기엔 별로일 것 같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것을 포기한다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마음을 열고 충분히 즐기며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라고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