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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매직 인 더 문라이트] 믿어도 괜찮아, 사랑이야

 

 

 

매직 인 더 문라이트

 

믿어도 괜찮아, 사랑이야

 

 

 

여기 마술사와 심령술사가 있다. 마술사는 오감으로 느껴지는데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눈속임의 기술이 좋을수록 명성을 얻는다. 알고 보면 마술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계산을 기반으로 한 설계와 훈련을 통해서 완성할 수 있는 작업이자 능력이다.

심령술사 역시 오감으로 느껴지는데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마술이 설계를 통한 눈속임의 기술이라면 심령술은 (최소한)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겐 의심의 여지없이 믿게 되는 신앙과 같은 것이다.

 

둘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육감(식스 센스)의 개입이 아닐까. 마술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만 심령술은 논리가 미치지 못하는, 오감을 넘어 육감이 개입해야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여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놓고 생각해보자면 사랑이야말로 오감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육감까지 개입해야 설명이 되고 잡아챌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너도 나도 사랑이라는 것을 하기에 다 같아 보이지만 다 제각각 다른 것도 설명할 수 없이 작용하는 각자의 육감 때문이 아닐까.

 

여기 육감이 개입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사랑 이야기가 있다. 사랑이 주는 감정의 놀라움이 마술보다는 심령술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바로 <매직 인 더 문라이트>.   

 

 

 

 

마술사 VS 심령술사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중국인 마술사 웨이 링 수. 그러나 그의 실체는 영국인 스탠리(콜린 퍼스). 최고의 찬사를 받는지라 겸손은커녕 스스로 최고임을 말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 같다. 그에게 마술 학교 동창이기도 한 오랜 친구 하워드(사이먼 맥버니)가 나타난다. 프랑스 마을에 젊고 아름다운 소피(엠마 스톤)라는 심령술사가 사람들을 홀리고 있고 부유한 미국인 가족을 홀려 그 집 아들이 청혼을 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소피가 가짜 사기꾼임을 밝히기 어려울 것 같으니 스탠리가 나서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한다. 자신의 능력을 치켜세우는 하워드의 말에 제안을 수락한 스탠리는 프랑스 남부 도시로 가서 소피를 만나게 된다. 첫 만남부터 자신의 정체를 읽어내는 소피를 보면서 스탠리는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마음 속에 혼란이 들기 시작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게 마술이라면 사랑보다 더한 마술이 또 있을까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실연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마술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으로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 심령술사를 의심한다. 그는 스스로를 과학, 논리, 상식에 가치를 둔 이성적인 인물이라 칭한다. 정작 자신도 사람들을 눈속임하는 기술을 부리지만 그것은 설계된 기술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술이 가짜 눈속임인 걸 알면서도 (즐겁게) 속아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령술은 설계된 기술도 아니고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으로 설명도 안 되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그 자체를 진실로 믿는다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아무리 봐도 심령술은 가짜 사기라고 확신하며 믿지 않는다.

그런데 논리와 과학을 따지며 무신론자이자 진화론을 믿는 이 남자에게도 소피의 심령술은 입이 떡 벌어지는 놀라움을 주며 가치관을 뒤흔든다. 그러면서 사랑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심령술을 믿으며 홀리는 사람들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만다.  

마술사 스탠리가 가치관의 혼란으로 인한 딜레마에 빠지고 그 끝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마법과 심령술이라는 닮은 듯 다른 영역의 두 사람의 충돌을 비추는 듯 하다가 어느덧 둘의 사랑으로 흐른다. 마법과 심령술, 사랑이 결국 거기서 거기로 통하는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게 마술이고 심령술이라는데 그렇다면 사랑보다 더한 마술이 또 있겠는가.

 

 

 

영화는 자신의 가치관이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을 두고 주변인들이 덫을 만들어 그가 자신의 가치관이 옳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만들려는 많이 봐왔던 고전적인 이야기의 틀을 택한다. 마침내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에 급변하는 모습은 마치 스크루지 영감이 하룻밤의 영적인 체험을 통해 완전히 다른 인물로 탄생하는 기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마무리되지 않고 한 번 방향을 튼다. 잠시 흔들렸던 스탠리가 제 가치관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엔딩은 예상대로 사랑의 해피 엔딩이다. 남자가 뭔가에 홀린 듯 사랑이라는 마술에 빠진 게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상태로 돌아와서도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영화 속 사랑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더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한 번 방향을 튼 시점부터 갸우뚱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우디 앨런 영화이게 만드는가

 

우디 앨런의 영화에 '사랑'이 소재가 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근래 우리나라 관객에게 사랑 받았던 우디 앨런의 영화로 인해 그의 영화가 달달한 사탕의 이미지를 입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관객들은 독설과 유머로 가득한 그의 영화에 대한 기대가 많은 것 같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역시 사랑을 중심에 둔 달콤한 영화이긴 하지만 콜린 퍼스의 입을 통해 수시로 쏟아져 나오는 냉소적인 대사는 우디 앨런의 대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것 같다. 잘난 척으로는 정말 우디 앨런 영화 속 인물 중 스탠리가 최고가 아닐까. 역시나 우디 앨런의 영화인 것은 걸어 다니면서 나누는 자연스런 대화 시퀀스에 있기도 하다.

한편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그의 전작들을 여러모로 생각나게 한다. 판타지적 체험을 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미드나잇 인 파리>, 점성술사가 등장하는 <환상의 그대>가 연상되고 어떤 장면에선 <매치 포인트>나 <로마 위드 러브>가 연상된다. 그 말은 즉, 어디로보나 우디 앨런 영화인 건 확실하나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장 핫한 음악이라며 스윙 재즈 선율에 춤을 추는 사람들의 의상과 분위기와  (디지털이라고 해도 우디 앨런 영화는 늘 이런 것 같은데) 필터를 끼운 듯 흐릿한 영상은 그대로 관객을 1928년 프랑스 남부로 초대한다. 고전적인 이야기의 틀 속에서도 매력을 발산하는 콜린 퍼스는 역시 잘 어울리는데 커다란 눈을 깜빡 거리는 엠마 스톤은 너무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서 미래에서 온 여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콜린 퍼스와 엠마 스톤의 나이 차는 28. 해묵은 우디 앨런 분석의 소재이긴 한데, 전 부인인 미아 패로가 입양했던 딸 순이 프레빈과 결혼해 살고 있는 (이 둘의 나이차는 35) 우디 앨런 본인의 입장을 적용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