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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비긴 어게인] 음악이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들리라

 

 

비긴 어게인  Begin Again

음악이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들리라

 

<비긴 어게인>은 음악을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삶이란 게 음악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므로 그들 각자의 삶엔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들 삶에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음악이므로 그 음악을 중심으로 그들 각자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맞는다. 다시 시작하게 되는 사람들, 그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진정성이다.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실력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다. 아직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대신 함께 작업한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르바인)는 대중적인 지지를 얻으며 미국의 메이저 레이블과의 계약을 하게 된다. 이에 데이브를 따라 뉴욕으로 온 그레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행복한 삶이 보장될 것 같았으나 메이저의 화려한 맛을 맛본 데이브의 외도로 뉴욕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당장 뉴욕에서 거리의 악사로 생활하는 친구 스티브(제임스 코든)를 찾아와 의지하게 되는 그레타. 모든 것을 접고 런던으로 돌아가려는 그녀 앞에 댄(마크 러팔로)이 나타난다. 댄은 그레타의 노래를 듣고 음악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구상을 하게 된다.

 

(마크 러팔로)은 메이저 레이블의 성공한 스타 프로듀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혼 후 술에 절어 살고 음반사에서의 입지도 점점 좁아지다 못해 해고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절망적인 순간 술을 마시러 간 클럽에서 기타 하나 들고 속삭이듯 노래하는 그레타를 보게 된다. 무대 위에는 기타 하나로 노래하는 그레타 뿐이지만 댄의 머리 속엔 이미 그 곡의 편곡까지 완성한 곡이 흐른다. 잘 다듬으면 쓸만한 재목이라고 여긴 댄은 그레타에게 함께 음반을 제작해보자고 제안한다. 가진 것도 없고 회사에서 해고까지 당한 마당이므로 대책은 없어 보이는데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을 따르고 진정성을 믿으며 길거리 연주와 녹음으로 음반을 제작할 것을 제안해본다.

 

데이브(애덤 르바인)는 여자친구인 그레타를 통해 음악적 영감을 얻으며 교감해왔다. 뉴욕의 대형 레이블과 계약하면서 화려한 세계의 맛에 빠져드는 데이브는 그레타를 두고 외도한다. 게다가 그레타와 함께 만든 곡을 재 편곡했는데 결과물엔 음악적 개성도 사라지고 영혼도 없이 남의 취향에만 맞춘 화려함만 남는다. 화려함을 얻는 대신 잃은 추억과 자신의 본질을 돌아보는 데이브는 흔들린다. 음악에 진정성을 담아보라는 그레타의 조언이 데이브를 되돌릴 수 있을까.





음악에 재능을 지녔고 음악 하는 것을 즐기며 그것을 자신의 인생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이들의 삶이 흔들린다. 음악만을 바라보고 열정을 쏟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그들을 순수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쥐고 흔든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찾을 수 있는 해법도 음악 안에 담겨 있다. <원스>의 존 카니 감독의 신작 <비긴 어게인>은 배경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미국 뉴욕으로 옮겨왔지만 여전히 음악을 소재로 꿈꾸는 인생을 그린다. 만약 <원스>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던 실제 주인공들에게 그 성공이 대신 앗아간 어떤 것이 있어 영화의 소재로 삼았다면 그것이 <비긴 어게인>이 되지 않을까.

 

 

 


음악으로 할 수 있는 판타지의 끝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레타와 댄 그리고 그레타의 친구 스티브가 협업을 통해 뉴욕의 길거리에서 직접 연주와 노래를 하고 그것을 현장에서 직접 녹음하는 방식의 음반 제작 과정이다. 도시 곳곳에서 들리는 소음을 차단할 수 없는 환경이므로 그것 또한 음악의 일부로 담기로 하고 연주와 녹음이 가능한 공간을 찾아 열정을 쏟아낸다. 주류 음악 산업에 기대지 않은 채 순수하게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모습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을 다시 찾고 그것에 희망과 기회가 있을 것임을 믿는 절실함으로 강렬하게 전달된다. 이 작업 과정이 영화에 없다면 어떤 인물의 감정 흐름이나 변화도 설득력을 지닐 수 없을 지경이다. 마치 뮤지컬에서 각 넘버가 이야기를 이끌고 가듯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이야기를 이끌고 인물의 감정을 설명한다.

 




재능과 진정성, 순수함, 주류에 대한 저항 정신 등을 갖춘 인물들이 뉴욕 길거리, 지하철 플랫폼, 건물 옥상 등에서 연주하고 녹음해내는 진풍경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그들만의 방식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판타지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되는 음악의 생동감을 전하면서 순수하게 음악을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은 일견 판타지로 느껴진다. 저게 가능한 모습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설정을 '판타지'가 아닌 '리얼'로 여길 수 있게 하는 힘은 감독인 존 카니에게서 나온다. 감독의 전작 <원스>는 음악을 통해 만난 남녀를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냈다. 거리의 악사들이 돈을 모아서 데모 테잎을 제작하는 과정은 절절한 리얼로 보였다. <원스>의 이야기를 리얼로 받아들였던 경험은 같은 감독의 신작 <비긴 어게인>의 판타지 같은 설정도 그럴 듯한 리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성공적으로 음반을 제작하고 그것을 대중에 공개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메이저 레이블의 러브콜을 거부하는 것 역시 순수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부각시키려는 설정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역시 상업성만을 추구하며 거품을 부풀리는 주류 음악산업계에 던지는 저항의 메시지로 읽히면서 현실이기를 바라게 만든다.


판타지임이 마땅한데 현실로 느껴지게, 현실이기를 간절히 믿고 싶게 만드는 감독이 부리는 일종의 마력에 빠지다 보면 몇몇 작위적인 장치와 진부한 흐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게 된다. 그렇다보니 <비긴 어게인>은 전작의 큰 성공을 통해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답안지로 보여 꽤 영리한 선택으로 읽힌다.





발견이라 할 만한 키이라 나이틀리의 노래, '마룬5' 보컬 애덤 르바인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노래, 볼수록 편안한 매력을 과시하는 마크 러팔로의 모습,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씨 로 그린의 모습은 시종 귀를 즐겁게 해주는 사운드트랙과 함께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