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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안녕,헤이즐] 너흰 정말 빛나는 별이야

 

안녕, 헤이즐

너흰 정말 빛나는 무결점의 별이야

 

 

전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던 영어덜트 소설 <The fault in our stars>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 지난 6월 미국 개봉 당시 톰 크루즈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같은 주에 개봉하며 경쟁했지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화제를 불러모았다. 영어덜트 소설이 원작인 만큼 10대와 20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설과 영화 모두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긍정의 에너지인 것 같다. 갑상선 암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수 차례 겪어야만 했던 주인공 헤이즐 그레이스, 암으로 다리를 잘라내고 의족을 한 어거스터스, 눈에 종양이 생겨 제거하고 말았음에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삭 등 주요 인물들을 보자면 '안됐다, 딱하다' 하는 동정심보다는 저절로 미소가 번지며 '멋지다' 하는 감탄이 나온다. 죽음의 위기를 항상 안고 사는 아이들이 주인공인지라 눈물 쏙 빼는 이야기인가 싶어 손수건을 챙기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오히려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원제 The fault in our stars로 유추할 때 아파서 고생하는,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안 아픈 사람들처럼 편하게 살지 못하는 이 주인공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완벽하지 못한 오점, 결점 같은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이 세상의 오점은 아픈 이 아이들이 아니라 그렇지 않음에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린 모두 이 세상에 가치 있는 별 일진데 빛을 내지 못하고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니까 말이다. 아프지만 긍정의 에너지로 밝게 살아내는 헤이즐 그레이스와 어거스터스, 이들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별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생애 최고의 친구를 만나다

 

헤이즐 그레이스(쉐일린 우들리)는 어릴 적부터 갑상선 암에 시달리며 이미 몇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부모님의 세심하고 따뜻한 보살핌으로 삶을 즐기며 긍정적으로 살고 있지만 늘 혼자인 것 같다. 그런 헤이즐이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엄마는 암 투병중인 친구들이 모이는 모임에 나갈 것을 권유한다. 등 떠밀려 나간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 세상에서 잊혀지는 게 가장 두렵다는 어거스터스와 헤이즐은 몇 번의 눈빛과 몇 번의 대화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개성 있고 당당해 보이지만 관계 맺기에 소극적인 헤이즐에게 외향적인 어거스터스는 마음을 열만한 적절한 친구로 보인다. 헤이즐 같은 성격에는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는 성격의 친구가 필요하다. 생각이 깊고 그런 생각을 유도하는 책을 좋아하는 헤이즐, 반면 운동을 즐기고 액션 판타지 소설을 즐기는 어거스터스는 얼핏 극과 극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서로 통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덧 서로 암호(오케이? 오케이!)까지 만들어가며 소통하는데 그로 인해 이 청춘들의 삶에 더욱 생기가 넘친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우정을 넘어 사랑까지 이어지는 관계가 되지만 둘은 서로에게 생에 또 다시 만날 수 없는 선물과도 같은 친구, 바로 그것처럼 느껴진다. 너무 아파서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은 듯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청춘. 그 청춘에게 허락된 선물처럼 귀한 우정과 사랑으로 둘은 서로에게 반짝이는 별이 되어준다. 나에게는 헤이즐 같은, 어거스터스 같은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신파? 아니 당당하게 빛나는 청춘의 이야기

 

아픈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아픈 아이를 둔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굿바이 마이 프랜드> <마이 시스터즈 키퍼>처럼 눈물을 쏙 빼는 신파로 영화가 흐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두 영화를 보면서 콧물까지 흘리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기에 역시 펑펑 울 각오를 하고 극장에 갔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신파가 아니었다. 주인공들이 아프고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도 가슴 아파하지만 그걸 보면서 눈물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왜일까 이유를 생각해보니 인물들이 너무나도 당당하고 주체적이었고 밝고 긍정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그리고 어거스터스의 친구 아이삭은 모두 암에 시달린다. 생사를 넘나들어 늘 산소통을 끼고 살고, 다리를 잘라내 의족을 하고 있고, 눈을 제거해서 앞을 볼 수 없다. 아픔에 파묻혀 낙담과 좌절 속에 살아갈 수도 있지만 이 아이들은 아프지 않은 다른 청춘들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즐기며 알차게 보낸다. 더구나 좌절 대신 긍정의 에너지까지 뿜어낸다. 아프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앓는 소리를 하며 의존하려 하지도 않는다. 가령 헤이즐은 늘 산소통을 들고 다니면서 코에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어야 하는데 단 한 번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들어달라거나 업어달라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좋아하는 작가의 초대로 찾아간 암스테르담에서 안네 프랑크의 집에 갔을 때 그 가파른 다락방까지 오르는 계단을 숨을 고르며 오르면서도 끝까지 의존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곁에 있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대단했다. 함부로 나서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기다리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아픈 아이들을 둔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부모님들의 모습도 대단했다. 과한 보호도 과한 측은함도 보이지 않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아이들을 대한다. 산소통을 늘 들고 다니고 의족을 하고 있지만 이 아이들은 자신이 운전을 직접 하고 농구도 한다. 헤이즐이 꿈에 그리던 작가를 만나러 암스테르담으로 갔을 때 헤이즐의 엄마는 동행하지만 최소한의 보호자로서 선을 넘지 않았다.

이 모든 인물들의 모습에 내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똘똘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행동을 컨트롤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이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동정하고 딱하다, 안됐다 하면서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긍정 에너지에 감탄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눈물을 쏟기 위한 동정과 측은한 마음은 들 새가 없이 이 인물들의 긍정 에너지에 빠져들기에 바쁠 뿐이었다. 긍정으로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는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너흰 정말 오케이고, 너흰 정말 이 세상에 빛나는 별이다.

 

 

 

우리 청춘들에도 긍정의 에너지를

 

아픔은 있지만 이렇게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청춘의 모습이 담긴 소설과 영화를 만들어내는 헐리웃 시장이 참 부럽다는 생각도 해본다. 늘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에 목말라하기에 해마다 몇 편씩 장르를 넘나들며 만들어지는 헐리웃의 영 어덜트(10대 후반~20대 초반)를 대상으로 한 문화 콘텐츠를 보면서 부러운 마음을 갖는다. 우리 독립영화계에서 그나마 다양한 시선으로 청춘을 담아내며 숨통을 열어주고 있지만 아직 여러모로 부족해 보인다. 여전히 입시 문제와 범죄 등에 시달리는 어두운 측면을 담은 작품들이 중심인 것도 아쉽다. 이 사회가 그런 문제로 득실대니 그 반영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안녕, 헤이즐>처럼 아프지만 멋지게, 쿨하게 살아내는 캐릭터의 면면이 빛나는 작품,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지고 많은 관객에게 호응을 얻는 작품들이 기획되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지니 파운데이션(The Genie Foundation)?

영화 속에 '지니 파운데이션'이라는 게 등장한다. 헤이즐은 너무나도 좋아하는 소설의 작가를 꼭 만나서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는데 어거스터스의 깜짝 도움으로 그 작가가 사는 암스테르담에 가게 된다. 암스테르담에 가기 위한 항공권과 숙소 등을 이 '지니 파운데이션'을 통해 어거스터스가 신청해서 제공받은 것이다. 헤이즐은 이미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는 것으로 이 '지니 파운데이션'에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지니 파운데이션'이란 무엇인가? 찾아보니 이것은 세계 최대 소원 성취 비영리 기구인 '메이크 어 위시 파운데이션(Make-A-Wish Foundation)'을 영화 속에서 '지니 파운데이션'으로 명명한 것이었다. '메이크 어 위시 파운데이션'은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질병을 앓고 있는 2세 반~18세 사이의 아이들, 청소년들을 위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비영리 기구이다. 1980년 경찰관이 되고 싶은 꿈을 지녔던 백혈병을 앓던 아이 크리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리조나의 경찰관 토미 오스틴이 앞장서 하루 동안 경찰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에서 영감을 얻어 조직됐다고 한다. 이 기구는 '메이크 어 위시 인터네셔널(Make-A-Wish International)'로 전세계 47개국에 운영 중이고 우리나라에도 '메이크 어 위시 코리아(Make-A-Wish Korea)'가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