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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명량] 그래도 한 방은 있다만...

 

명량

그래도 한 방은 있다만...

 

아쉬움이 많았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한국 팀의 경기를 떠올려본다. 밤 잠 아껴가며 승률을 계산하고 분석을 하며 고함치고 흥분하고 마음 졸이며 지켜봤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비단 2014년 월드컵 뿐이랴. 그 전 월드컵 때도 그렇고, 월드컵이 아닌 여러 스포츠 국가 대항전에서 우리는 가슴을 졸이며 응원을 한다. 벅찬 승리에 감동하기도 하고 석패에 눈물 짓기도 한다. 그게 뭐 별거냐 싶으면서도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응원하며 지켜보는 마음을 거두기 힘들다.

 

왜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전투를 이런 스포츠 국가 대항전과 비교할 수는 없겠다. 그런데 왜의 침략에 맞서 승률이 없다고 '국가'에서 판단한 전투에 죽을 각오를 하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가는 순간을 만들어가며 이긴 명장 이순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명량>을 보면서 한국 팀이 출전하는 스포츠 국가 대항전을 보면서 가슴 졸였던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가진 게 너무 없어서 맞서 싸울 수도 없을 것 같고, 싸운다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일 것 같은 그 전투에 나라에서조차도 내놓아버린 군대를 이끌어가며 싸우는 모습은 열세였지 우세였던 적이 드물었던 (언제나 지원에 목말라 하는) 한국 스포츠팀의 경기를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도 영화에서 가장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이 전투를 지켜보던 백성들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보니 경기 때마다 거리며 어디며 장소를 불문하고 목 놓아 응원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됐다. 명량해전의 '승리는 천행이며 그 천행은 다름아닌 백성'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에 실린 힘은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증명처럼 보였다.

 

 

<최종병기 활>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김한민 감독의 신작 <명량>은 확실한 수 몇 개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그 수를 짜임새 있게 담아내는 것에 한계를 보인 작품이다.

 

왜의 침략에 맞서는 역사적 명장의 이야기, 온갖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겨낸 통쾌한 실화의 힘, 백성들의 도움과 힘이 함께 일궈낸 승리라는 감동, 최민식, 류승룡 등의 스타가 참여한 작업이라는 점은 명확하게 관객을 당기는 확실한 수이다. 여기에 정치 사회적으로 지략과 용기, 강하고 올곧은 의지를 탑재한 리더의 부재와 무고한 아이들의 희생이 있었던 참사에도 뭐 하나 밝혀내지 못하는 무능과 밝히지 않는 부패가 넘치는 현실에서 답답함과 분노를 품고 있는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강렬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감독과 제작진도 아마 그 점을 정확히 간파하지 않았을까. 그래선지 영화에서 가장 감동을 일으키는 요소는 말 못하는 정씨 여인(이정현)이 치맛자락을 풀어 흔들고 이에 백성들이 동참하며 위기를 모면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감동을 받은 가장 큰 부분이 백성들의 활약이다 보니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최민식)이나 구르지마(류승룡)의 개성이 덜 보인다.  

이어 명량해협(울둘목) 회오리 파도에 휩쓸리는 대장선을 끌어내는 백성의 힘은 울컥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지경이다. 왜의 군함이 파도에 휩쓸리고 그 군함을 정면 돌파하는 모습들에는 통쾌함이 절로 일어난다.

 

 

절묘하게도 영화를 팽팽하게 당기는 힘은 안위(이승준)가 당기는 한 발의 활에서 출발한다. 전투에 패할 것이 명백하니 군대를 철수하는 게 옳다고 주장하던 경상우수사 배설(김원해)은 결국 내분을 유발하고 구선(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데 그를 잡는 화살 한 발, 뒤에 이순신 장군을 노리는 왜의 저격수 하루(노민우)를 한 방에 보내버리는 화살 한 발은 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감독의 최종 병기는 <명량>에서도 역시 ''인가 싶다.

 

 

반면 이런 좋은 수를 갖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영화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건 전반적인 구성과 연출력에 대한 아쉬움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상당히 지루하다. 묵직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게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진부하고 느슨하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세련된 맛 보다는 그만의 투박함이 있다고 종종 말하곤 하는데 이번 <명량>에서 보여준 김한민 감독의 연출은 마치 강우석 감독의 투박한 연출을 가져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투박함이 묵직한 이야기와 함께 힘을 발휘했으면 좋았겠지만 맥 없고 맛 없는 느슨함으로 흘러 아쉬웠다.

이순신 장군에 충언을 한다며 저항하는 배설(김원해)이 등장하는 오프닝은 명량해전을 앞둔 내부의 갈등, 불안을 짐작하게 하는 함축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오프닝의 팽팽한 기운을 유지하지 못한 영화의 전반부는 꽤 지루하다. 전투 전, 폭풍의 전야지만 너무 느슨하게 진행되어 긴장감이 떨어지고 심지어 남은 한 척의 구선(거북선)이 불타는 장면도 좀 늦게 찾아온 듯 타이밍이 아쉽다. 맥 없이 흐르던 전반부의 호흡은 명량해전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템포를 찾아가는 듯 하지만 왜의 저격수를 향한 화살과 화약을 실은 왜의 배에 탄 임준영(진구)과 정씨 부인(이정현)의 치마를 흔드는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활발한 맥을 만나기 어렵다.

 

 

음악에 대한 의견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보기 전 오리지널 스코어를 들었다. 웅장하면서도 긴장감이 흐르는 음악은 마치 극적인 동작을 선보이는 현대 무용을 연상시킬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이 음악이 영화 내내 완급조절을 못하고 흘러나온다. 명량해전이 그려지는 거의 한 시간 가량 음악은 거의 멈추지 않는다. 내내 음악이 흐르는 것이 마치 극의 흐름을 음악에 모두 맡긴 듯한 인상까지 준다.

 

우리 영화에 역사 속 왕이 아닌 명장을 직접 등장시킨 (팩션이 아닌) 영화가 언제 또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만큼 <명량>은 관심이 가는 인물,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을 소재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 방이 주인공인 중심이 아닌 변방인 백성에서 나온다는 점은 예상을 벗어났지만 이는 관객을 감동시키는 확실한 한 방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한 방에 기댄 것인지 맥 없이 흐르는 전반부와 클라이막스의 힘을 너무 쉽게 풀어버린 듯한 엔딩을 보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만듦새에 끝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