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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프란시스 하] 접혀서 끼워 맞춰졌지만 당당하게 홀로 서는 이름

 

 

프란시스 하

접혀서 끼워 맞춰졌지만 당당하게 홀로 서는 이름

 

 

 

어린 시절 단짝 친구가 있었던 사람,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직장생활 결혼생활 등으로 이어지는 단계로 접어들면서 그 친구들과 의도치 않게 소원해지는 경험을 한 사람, 근사한 롤 모델을 바라보며 원대한 꿈을 품었으나 현실이라는 벽에 한계를 느끼고 타협하며 꿈을 접거나 노선을 달리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 이런 모습들이 보편적이라며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 프란시스 역시 이런 보편적인 삶의 과정을 이제 막 통과하려고 한다. <프란시스 하>'쌍둥이나 마찬가지'라고 소개하는 단짝 친구 소피의 예상치 못한 독립 선언 이후 홀로 서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이자, 27살의 나이에 여전히 무용단의 견습생이고 그마저도 위태로운 상태임에도 댄서가 아니면 절대 안 되겠다며 꿈에 대해 고집을 피웠던 프란시스가 현실을 직시하고 꿈에 대한 고집 대신 삶의 안정을 찾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프란시스의 모습을 통해 익숙해서 놓고 싶지 않았던 것들과 결별하며 홀로서기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성숙해지는 우리의 모습까지 바라볼 수 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단짝 친구인 소피(믹키 섬너)와 함께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서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티격태격 하지만 함께 어울리기에 죽이 잘 맞는 평생 함께 가고픈 친구다. 어느 날 프란시스의 남자친구 댄은 고양이를 입양해서 함께 살자는 제안을 하는데 그녀는 영 내키지 않는다. 소피와 함께 사는 아파트의 계약 연장 등을 핑계로 힘겹게 거절하는 태도를 취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싫은 눈치고 무엇보다 단짝인 소피와 헤어지는 걸 상상하기도 싫은 눈치다. 그런데 그런 프란시스와 달리 소피는 꿈꾸던 동네인 트라이베카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망설임 없이 프란시스에게 통보한다.

그렇게 떠나겠다는 소피를 보낸 후 프란시스는 불안정한 상태에 빠져든다. 당장 살 곳을 구해 이사를 하고 생활을 위해 무용단에 안착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모색하지만 모든 게 순탄하지 않다. 사이사이 들려오는 소피의 이야기는 자신의 불안정한 상황이나 공허한 심리 상태와는 달리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한 소식들 뿐이다. 남자 친구가 생겼고 그 남자 친구를 따라 직장도 그만두고 일본으로 간다는 소식 등을 (소피로부터 직접도 아니고 타인을 통해) 전해 들을 때마다 프란시스의 공허한 마음은 심란해지고 즉흥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형편에 맞지 않는 아파트에 룸 셰어로 들어가기도 하고 충동적으로 파리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 사이사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소피에 대한 이야기, 주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프란시스의 모습은 얼핏 철딱서니 없는 철부지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홀로서기를 맞닥뜨린 인간의 공허한 심리상태로 보여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게 든다. 익숙한 것, 좋은 것이 평생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그런 나의 소망이 다른 사람들과 늘 일치하리라는 법은 없다. 관계에서도 더 주는 사람과 덜 주는 사람이 있는데, 홀로 서지 못하는 사람은 더 줬던 자신의 마음까지도 부족하지 않았었나 미련을 품게 된다.

시간이 흘러 우연하게 만난 소피가 약혼자와 싸우고 술에 취해 자신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찾아온 밤, 프란시스는 여전히 소피를 위로하고 자신을 찾아온 친구에게 고마워한다. '침대에선 양말 좀 벗자'라는 친구의 변함없는 잔소리조차도 프란시스에겐 따뜻한 온기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다음날의 풍경은 프란시스를 현실의 한복판으로 밀어낸다. 어김없이 떠나는 소피를 따라 나와 허망하게 외쳐대는 모습과 맨발로 뛰어나온 자신의 발을 쳐다보는 모습은 이제 때가 됐음을 알리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그 이후 프란시스는 안정적인 삶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익숙했기에 떠나 보낼 수 없었던 상태와 결별하고, 대책 없이 맨발로 돌진했던 스스로를 자각함으로써 이제 프란시스의 홀로서기는 시작되는 듯 하다.

 

 

댄서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지만 아직도 커버 댄서, 견습 댄서에 머물고 있는 프란시스. 사무직으로 변경해서 댄서가 아닌 안무가로 일해보는 것을 제안 받지만 주저 없이 거절했었다. 그러나 춤에 대한 열정과 오로지 한 길만 바라왔던 꿈에 대한 고집을 접고 마침내 안무가로 변화를 꾀한 프란시스의 삶은 전보다 안정적이고 뭔가 더 맞는 옷처럼 보인다. 모두가 꿈 꿀 수는 있으나 모두가 이룰 수는 없는 꿈,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정은 품은 채 길을 달리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포기나 타협이라는 설명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 열정이 부리는 고집이 아니라 열정이 열어준 새로운 시야로 발견한 길을 택한다고 할 때 프란시스의 선택은 역시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의 마지막 접힌 종이에 적힌 '프란시스 하'라는 이름은 영화를 단 한 줄로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렬한 숏이다. 접혔으되 비로소 제대로 홀로 서는 것처럼 보이는 프란시스. 보편적으로 이어지는 삶의 단계로 접어들며 우리가 가졌던 심상을 떠올리며 영화 내내 프란시스의 달음박질에 몰입한 관객이라면 마지막 숏에는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프란시스를 향한, 프란시스와 다르지 않은 자기 자신을 향한 응원 말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대화가 풍부한 짧고 경쾌한 시퀀스들이 단조로운 음악 사이사이에 배치된 것이 우디 앨런의 영화를 연상시키고, 길을 달리는 프란시스의 모습에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를 배경으로 사용한 것은 레오 카락스의 <나쁜 피>의 장면을 음악이 컷 되는 지점까지 유사하게 적용시키며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 노아 바움백이 택한 형식 면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흑백화면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설정(프란시스의 부모 역할은 실제 배우 그레타 거윅의 부모가 출연하기도)과 묘사가 담긴 영화는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표현되었기에 화려한 배경이 아닌 인물들의 심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동시에 현실처럼 컬러가 아닌 픽션(동화)같은 흑백으로 펼쳐지는 영화 속 장면은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보면서도 꿈 꾸듯 픽션으로 관객 스스로 치장하게 만든다. 현실을 고스란히 담았지만 형식 면에서는 날카롭게 찌르는 대신 부드럽게 토닥이는 방법을 택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