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ver the silver screen

[탐엣더팜]상실의 쓸쓸함에 가리워진 탐의 길

 

 

탐 엣 더 팜

상실의 쓸쓸함에 가리워진 탐의 길

 

 

너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할거야

(자비에 돌란)은 연인 기욤의 장례식을 위해 그의 고향인 퀘백의 농장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냅킨에 추도사를 적어보기도 한다. '오늘 나의 일부 같은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습니다. 슬픔이라는 단어의 동의어가 무엇이었는지 조차도 잊어버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너 없이 살려면 너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할거야.'

드넓은 농장이 펼쳐져 있고 인적이 드문 마을. 기욤의 엄마 아가테(리즈 로이)와 형 프랑시스(피에르-이브 카디날)를 만난 탐은 그들과 그 집으로부터 기욤을 느낀다. 감정의 기폭이 큰 아가테와 거친 폭력으로 위협하는 프랑시스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은 마치 기욤의 흔적을 미끼로 삼은 것처럼 탐을 조금씩 옭아맨다. 그렇게 기욤의 집과 가족이 있는 농장에 머무는 탐, 그는 그곳에서 기욤을 대신할 무엇인가를 찾은 것일까.

 

 

기욤의 연인 탐, 기욤의 엄마 아가테, 기욤의 형 프랑시스. <탐엣더팜>은 기욤의 생전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세 인물이 기욤의 장례식을 계기로 처음 만나고 기욤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만들어내는 풍경이 어둡고 강렬한 스릴러와 심리극의 분위기를 내는 영화다.

 

연인을 떠나 보낸 후 상실의 고통 속에서 연인을 대신할 만한 존재가 간절한 탐에게 기욤의 집과 가족은 빠져들수록 벗어날 수 없는 늪과 같다. 기욤이 썼던 방과 옷에서 그의 체취를 느끼고 그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슬픔과 분노에 동조하며 연민을 느낀다. 거친 폭력으로 자신을 협박하는 프랑시스에게선 또 다른 기욤을 느끼고 그 폭력을 당하고 견디면서 스스로가 기욤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젖기도 한다. 기욤의 가족과 농장이 기욤을 대신할 만한 실체는 아니지만 기욤의 흔적과 향기와 환경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탐 자신을 기욤과 동일시하는 환각에 빠져드는 존재와 공간이 된다. 농장에서 벗어나려 했던 시도가 폭력을 불러 상처를 남겼음에도 탐은 적극적인 탈출 의지를 접는다. 반면 프랑시스가 권하는 술과 약물에 젖고 그에 연민을 느끼고 빠져든다. 탐이 심각한 환각에 빠졌다는 것은 몬트리올에서 사라가 왔을 때 명확해진다. 어느새 농장에 머무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탐의 모습은 연인을 잃고 간절히 대안을 원하는 사람의 상처와 그 후유증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납득할 수 없는 정치, 사회적 상황에도 물들어버리며 합리화하고 관점 자체가 흐릿해지는 현대인의 모순과 불합리한 상태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탐이 겪고 있는 그 모든 상황은 그의 연인 기욤도 견디지 못하고 16세 때 빠져 나왔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탐은 그곳에 발목을 묶는다.

 

 

기욤의 엄마 아가테는 무서운 캐릭터다. 그녀 역시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고 집을 떠났던 아들에 대한 서운함과 죽은 아들의 장례를 지키지 않는 아들의 연인(이라고 믿는 대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녀의 슬픔과 분노가 언제 어떻게 폭발할 지 예측하기는 어렵고 그녀에게 즐거움이란 어떤 것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캐릭터다. 무엇보다 그녀는 프랑시스를 통해 드러나는 폭력과 억압의 근원으로 비춰진다. 아가테 또한 기욤이 일찌감치 벗어나고 싶었던 농장의 한 축이었을 것임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기욤의 형 프랑시스는 남성적인 야성미가 있지만 거친 폭력으로 탐을 지배하려 한다. 그가 동생인 기욤에게도 그렇게 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계할 정도의 폭력적 전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동생인 기욤을 보호하고 엄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겠지만 통용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 또한 농장과 엄마가 있는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고 토로하지만 누구보다도 단단히 그 환경에 매여있다. 그래서 더욱 탐이 농장을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 아가테, 프랑시스. 세 사람은 각자의 심리 상태와 상황에 따라 걸어가다가 기욤이라는 공통분모가 생기면 서로 뒤엉켜버린다. 슬픔을 나누고 위로를 나누는 그림이 아니라 제 상처를 중심으로 그것을 일방적으로 받아줄 대상만이 있기를 바라는 자세다. 그러니 결코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서로 대상이 되어지는 형상으로 뒤엉킨다. 그 와중에 농장에 들어간 외부인으로서 적극적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하고 주저앉는 탐은 답답해 보인다. 그에게 몇 번이나 '왜 도망치지 않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관객 역시 그 답을 모르고 있지는 않다. 연인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이 연인의 삶을 입고 있는 듯한 매력이 있는 그 공간을 탐은 결코 떠날 수 없음을 말이다.  

 

 

탐은 프랑시스가 가하는 폭력과 술과 약, 기욤의 기운에 젖어 서서히 판단력이 흐릿해진다. 하지만 외부에서 전하는 진실에 번쩍 환각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농장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옥수수 밭을 가로 질러 도망치다가 온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러 병원에 갔을 때, 탐이 프랑시스의 농장에 머문다는 얘길 듣고 의사가 말한다. "몬트리올까지 잘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돌아온 몬트리올의 밤거리, 하지만 그 곳에서 탐이 느끼는 감정은 벗어났다는 안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욤을 대신할 상대가 여전히 없는 쓸쓸한 상실의 감정으로 보인다. 방금 악몽에서 깨어난 듯 하지만 그 악몽은 상실의 아픔은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줬다. 그러나 악몽에서 깨어나 돌아온 현실에선 연인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연인을 잃은 후 안개 속에 싸인 가리워진 길로 탐은 다시 돌아와 서 있다.

 

 

20세에 <나는 엄마를 죽였다>로 데뷔하면서부터 주목을 받았고 <하트비트><로렌스 애니웨이><탐엣더팜>까지 거침없이 성장했고 최근작 <마미>2014년 칸 국제영화제에선 역대 최연소 감독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탐엣더팜> <하트비트><로렌스 애니웨이>에 비해 이야기는 더 강렬해졌고 표현은 정제된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유자재로 멋을 부리는 자비에 돌란 표 영화이다. 슬로모션과 클로즈업, 오프닝과 엔딩, 중간 탱고 신과 펍 신에서 사용된 음악은 여전히 강렬하다. 가브리엘 야레의 스코어가 흐를 땐 자연스레 극이 스릴러의 분위기로 빠져드는 힘이 있다. 화면 비를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변형하는 장면도 사이사이 사용한다. 탐이 옥수수 밭을 가로질러 도망치는 시퀀스와 떠나려던 탐을 데리고 나선 프랑시스가 같이 맥주를 마시며 취중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에서 사용된 화면 비의 변형은 인상적이다. 밀쳐내지만 끌어당기고 끌리게 되는 둘의 상황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자유자재로 영화로 표현하는 힘은 연인을 떠나 보낸 아픔의 후유증과 대안을 찾으려는 몸부림, 그렇기에 벗어나지 못하는 늪을 보여주며 감성적인 접근을 하면서도 그것을 현 세계를 지배하는 정치, 사회적 흐름에 대한 은유로 읽히는데도 무리 없게 만든다.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루퍼트 웨인라이트의 'going to a town' '미국, 너한테 정말 진절머리가 나'라는 가사가 반복적으로 흐르고 탐이 가까스로 농장을 벗어날 때 그를 쫓던 프랑시스가 입었던 점퍼에 'USA'라는 글씨와 성조기 무늬가 그려졌던 것은 그냥 집어넣은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