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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고질라]고질라의 긴 꼬리 앞에 절로 꼬리 내릴 수 밖에 없는 미미한 존재, 인간

 

 

고질라 GODZILLA

고질라의 긴 꼬리 앞에 절로 꼬리 내릴 수 밖에 없는

미미한 존재, 인간

 

'Size does matter'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1998년 개봉했던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 이후 16년 만에 <고질라>라는 타이틀의 헐리웃 영화가 개봉했다. 이번 작품은 느닷없이 등장해 파괴력을 과시하는 괴수로서의 고질라가 아니라 생태계 최상위 존재로서 오히려 인류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그려졌다.

2010년 작 <몬스터즈>(국내 5 29일 개봉 예정)로 주목 받았던 가렛 에드워즈는 철저하게 고질라의 원형을 되살리는 데 집중하고 말 그대로 고질라를 부각시키는데 집중한 작품으로 <고질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야말로 '고질라의, 고질라에 의한, 고질라를 위한' 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고질라를 중심에 위치시킨 작품이다. 그만큼 인간의 존재감은 미미하고 고질라의 대적 상대 또한 같은 괴수인 무토(MUTO)를 등장시킨다.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는 없으나 60년의 역사를 지닌 프랜차이즈 캐릭터를 다시금 스크린에 불러온 시도는 몇 년 사이 헐리웃 영화의 돌파구처럼 자리매김한 리부트 작업의 선상에 <고질라>를 올려두려는 의지로 짐작할 수 있겠다.

 

 

인재를 만드는 인간의 한계

인류나 지구의 적으로서가 아닌 공존자로서, 인류가 범접할 수 없는 크기와 힘을 지닌 존재로서 고질라를 묘사한 이 작품은 핵 발전, 원자폭탄 등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등장한 괴수라는 면을 부각시킨 것에서 그 원형에 가까이 갔다고 할 수 있겠다. 고질라는 미국의 원폭 공격에 의한 일본의 피해 의식이 만들어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 공격으로 인해 심해에 살던 괴수가 깨어났다는 설정인데 고질라 캐릭터가 탄생한 1954년에 투영된 그런 일본의 자기 반성 없는 원망이 현재까지 이어질까 우려되기도 한다. 2011년 쓰나미로 인한 원전사고는 아직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개발 논리로 여전히 안전 문제가 불거지는 사업을 수주하고 가동하고 개발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은 영화 속 아둔하게 아집에 빠진 채 반성도 없이 속수무책 피해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화는 인간의 존재와 힘을 매우 미미하게 표현하며 자연 앞에 오만하여 인재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한계와 잘못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인간 영웅을 등장시키지 않는, 고질라에 의한 블록버스터

2014년 작품 속 고질라의 모습은 초기 일본 토호사에서 만들어낸 <고질라>의 원형을 보지 못한 채 유일하게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특히나 다른 모습의 고질라로 보여질 만 하다. 이번 <고질라> (적어도 가장 최근의) <고질라>와 확연히 다른 지점은 고질라의 캐릭터와 영화 속 인간의 역할에 있다. 인간이야 뭘 어떻게 하든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단지 제 단잠 깨운 괴수들을 무찌르는 고질라의 캐릭터에는 범접할 수 없는 오라가 느껴질 정도다. 반면 인간의 존재감이란 참 미미하다. 예를 들어, 1999년 원전 폭발로 인해 아내를 잃고 그 후 그 재난 뒤에 숨겨진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고 의심하며 미친 사람처럼 자신만의 연구를 해 온 남자 조(브라이언 크랜스톤)의 경우를 보자. 15년 전 그 때와 동일한 징후를 발견하고 뭔가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하지만 국가의 통제와 은폐에 가로막힌다. 무토가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서 조의 연구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리라 기대하게 되지만 난리 중에 조는 운명을 달리한다. 물론 그가 남긴 몇 마디와 그의 방에서 발견한 책 등을 단서로 아들 포드(애런 테일러 존슨)가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을 찾아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년간 연구를 해온 조의 허무한 죽음은 예상을 빗나간 설정이었는데 이로 인해 재미에 대한 기대가 반감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결정적으로 이 영화가 인간 영웅을 등장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단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영웅이 등장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성조기를 펄럭이는 것을 헐리웃 재난 블록버스터의 전형성이라고 비웃었음에도 그런 공식에 익숙해진 뇌는 인간 영웅 탄생의 싹을 애초에 제거하는 설정에 갸우뚱해진다.

 

 

 

인간은 늘 한 발 느리다

이후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앞서는 무토와 고질라를 따라가느라 숨차고 가랑이 찢어진다. 음파 교신을 통해 암수가 만나려는 무토의 신호를 눈치 채고 그 자취를 쫓지만 이미 사태는 벌어진 후이다. 영화는 무토가 휩쓸고 간 자취를 군인 등 등장인물들이 뒤늦게 발견하고 놀라 굳어버리는 장면들을 여러 번 보여준다. 실내를 수색하다 깜짝 놀라 문을 열었더니 이미 사태는 벌어진 후라 휑하게 외부로 뚫린 벽면을 바라보는 설정은 영화 속에서 인간이 되풀이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이건 어쩌면 경험을 했음에도 반성이나 겸손함 없이 아집과 개발 논리에 젖은 인간의 아둔함이 있기에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보인다. 15년이나 연구한 조의 말을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고 연구진들도 여전히 15년 전 그 피해 상황에서 한 발치도 나아가지 못했기에 똑같은 피해가 지구를 덮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사태가 벌어진 후에도 인간이 하는 온갖 노력이란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앞서 나가지 못하고 화석 같은 자취나 들여다보고 있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다. 인간 영웅을 등장시키지 않는, 애초에 인간 영웅이란 등장할 수 없는 게 현실임을 자각한 현명한 블록버스터는 그렇기에 보는 동안 낯설지만 본 후엔 신선한 관점이라는 생각을 덧붙이게 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필리핀 채굴장에 다닥다닥 매달린 개미처럼 보였던 것이 가까이 다가가니 일하는 인간이었음을 알게 되는 그 장면은 돌이켜 생각했을 때 (거대한 고질라의 시점에서라면 더욱) 미미한 존재일 뿐인 인간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깨닫게 된다. 동시에 그렇기에 이 영화는 온전히 (영어 발음으로는 '(GOD)질라') '고질라'에 확실히 무게 중심을 두게 되었다.

 

실상 고질라를 인간의 편에서 인간을 돕기 위한 캐릭터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곤히 잠든 자신을 뒤흔들었기에 생태계 최상위의 존재로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고 그것이 인간에게 도움이 됐을 뿐이다. 인간 영웅이 없는데다가 인간이 끊임없이 삽질을 해대는 통에 고질라의 모습이 <트랜스포머>의 인간 편에서 지구를 구하려고 육중한 기계 몸으로 서로 싸우는 로봇들의 모습과 겹치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은 그 로봇들처럼 인간 편인 게 아닌 그저 지구상에 인간과 공존하는 존재인 고질라일 뿐이다. 이후의 고질라의 행동이 인간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전적으로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여전히 아둔하게 아집에 빠져 무분별하게 개발을 해댄다면 무토가 아닌 그 어떤 게 깨어나고 그로 인해 고질라의 행동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사실 언제 어디서나 문제를 일으키는 건 인간이라는 종,  딱 하나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