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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필로미나의 기적] 필로미나의 아픈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격자무늬의 주름살

 

 

필로미나의 기적

필로미나의 아픈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격자무늬의 주름살

 

 

기도하는 필로미나 리(주디 덴치)는 출산했던 아이의 기억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임신을 이유로 강제로 수녀원에 보내진 필로미나는 미혼모로서 핍박의 세월을 보냈다. 출산한 아이를 볼 수 있는 건 하루에 1시간 뿐, 나머지 시간은 세탁 등의 노동으로 수녀원에서 지내기 위한 생활비를 대신해야 했다. 미혼모가 된 것은 신에게 죄를 지은 것이라는 수녀원의 꾸짖음과 엄격한 통제 속에서 아이를 마음껏 돌보지도 못하는 답답한 시간이 흐르지만 가진 것 없는 그녀로선 딱히 선택의 길도 없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아이가 입양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어찌 하지도 못한 채 아들 안소니와 생이별해야 했던 50년 전의 기억은 필로미나 안에서 겉으로 꺼내지 말아야 할 비밀로 머물렀다. 그 모든 것을 신에게 저지른 죄값으로 여기면서.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혼란스럽다. 신 앞에 지은 죄가 큰 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큰 지 말이다. 50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생각하고 궁금해하던 아이의 행방을 찾아 만나고 싶다는 필로미나의 의지는 진실을 택하고 엄청난 비밀이 세상에 드러난다.  

BBC기자였고 노동당 고문으로 활동하다 좌천된 마틴 식스미스(스티브 쿠건). 그는 우연히 만난 필로미나의 딸을 통해 필로미나의 오랜 소원인 친아들 찾기에 가담하게 된다. 사회부 기자로 오랜 시간을 지내온 그에게 이런 개인사적인 소재는 영 내키지가 않는다. 그러나 필로미나의 사연이 갖는 묘한 끌림이 그를 움직이게 한다. 당시 많은 아이들이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필로미나와 함께 그녀의 아들의 자취를 찾아 미국 워싱턴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아들 안소니의 행적을 쫓으며 놀라운 진실들이 밝혀진다.

 

<수녀원에서 아들 안소니를 껴안는 필로미나>

 

<필로미나의 기적>은 실존인물인 필로미나 리의 실화를 담은 마틴 식스미스의 저서 [필로미나 리의 잃어버린 아이(The lost child of Philomena Lee)]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인 책은 저널리스트의 필력이 드러나 더욱 냉철하게 부조리를 꼬집는다고 한다. 영화는 그런 원작에 극적인 요소를 더했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건드리면서도 좀 더 위트 있고 밝은 기운을 불어넣었다. 영화 속 마틴으로 등장하는 스티브 쿠건이 제작과 각색 작업에 참여했는데 좀 더 극적인 각색을 하면서도 부조리한 현실을 지적하는 날카로움 또한 잃지 않았다 

 

필로미나가 출산을 했던 1952, 당시 아일랜드는 궁핍한 경제난을 탈피하기 위해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들을 세계 각국에 돈을 받고 수출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미혼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어디로 입양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이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각서에 사인까지 해야 했다. 여러 차례 실태에 대한 고발이 이뤄지고 총리의 사과도 있었으나 영화 말미에 나오듯 여전히 자신의 아이의 행방을 모르는 미혼모들은 영화 속 필로미나처럼 아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런 반인륜적인 국가 정책과 그에 동조한 수녀원의 이야기가 충격적이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가공된 부분이 있다고 한다. 가톨릭과 수녀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지닐 수 있게 각색된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런 개인의 삶을 뒤흔든 비극이 개인의 의지와는 달리 국가의 정책이나 종교인의 신념을 가장한 강제에 의해 자행된 것은 현재에도 경계와 비판의 날을 놓을 수 없는 문제이기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아들의 행적을 찾아 떠나는 필로미나와 마틴>

 

필로미나라는 인물의 삶은 참 기구하다. 어린 시절 뭣도 모르고 남자와 관계를 맺은 것이 덜컥 임신이 되어버렸고 그런 자신의 상황을 변명할 수도 없이 그저 죄인으로 몰렸다. 게다가 아이까지 뺏기다시피 떠나 보냈고 그렇게 50년을 살았다.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죄인이라는 시선에,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를 버린 자책감에 그녀의 삶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런 고통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살았을 그녀의 내면은 얼마나 상처투성이였을까.

이 복잡하고 상처 투성이인 내면을 지녔을 필로미나의 외면은 의외로 단순하고 순수하다. 로맨스 소설을 시리즈로 읽어가며 그 안에 캐릭터에 빠져든다. 그래선지 상처를 덮는 순수하고 밝은 모습이 그녀가 겪고 있는 상황을 무덤덤하게 넘기는 듯 보인다. 아들 안소니의 행적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그녀는 아이같이 기뻐하지만 충격적일 수 있는 진실들이 밝혀지는 것 앞에 주변 사람들이 의아할 정도로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그 타버린 마음을 혼자 다스리고 있었다. 고해성사를 하면서, 혼자 호텔 테라스에 나와 우는 그녀의 모습은 아픔마저도 드러내지 못하고 감춰야 했던 그녀의 삶을 더욱 아프게 드러낸다. 아무리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으로 고통을 덮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주름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화 내내 주디 덴치의 얼굴에 드리운 격자무늬의 주름살이 눈에 띈다. 그 알 수 없이 복잡한 선으로 연결된 주름살은 감출 수 없는, 어쩌면 용서할 수 없는 시간을 견뎌낸 필로미나의 아픔이 그어낸 것 같다.

 

<실제 필로미나 리와 필로미나를 연기한 배우 주디 덴치>

 

개인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국가의 정책과 종교적 신앙에 의해 통제되고 강제되는 것이 만들어내는 비극들이 있다. <필로미나의 기적>은 국가적 정책에 대한 묘사보다는 종교적 신앙에 의해 강제됐던 부조리함을 더 크게 부각시켰다. 가톨릭이라는 종교와 수녀원이라는 공간 속에 엄격한 원장 수녀들이 개인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종교의 이름으로 빼앗아가면서 벌어진 비극을 담았다. 그들의 종교적 신념, 원칙은 숭고하다고 할 수 있으나 단죄의 자격을 신에게 돌리는 그들마저도 감히 타인을 단죄하려 했고 그로 인해 한 인간(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의 삶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낸 것은 모순이다. 오히려 그런 원장 수녀의 선택은 용서하지만 이 사실은 글로 남겨달라는 필로미나의 선택은 그런 모순의 삶을 더욱 수치스럽게 만든다.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을 망친다, 그래서 나는 용서한다."는 필로미나의 선택, 하지만 이런 사실은 널리 알려야겠다는 단호한 결정이야말로 영화의 번역제목에 붙은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통해 입양의 문제, 잘못된 신념과 강제의 삶에 대한 자각과 각성이 뒤따르고 그것이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