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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야기를 타고 흐르는 위대한 유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야기를 타고 흐르는 위대한 유산

 

 

앞뒤로 전쟁을 겪어야 했던 시대. 평화와 예술이 숨쉬던 공간은 전쟁을 겪으며 낙후되고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문을 닫지 않고 옛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며 운영되는 호텔이 있었으니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이 호텔은 누구의 소유이고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불분명한 정체는 작가(주드 로)와 현재의 운영자 제로(F.머레이 아브라함)의 대화를 통해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진다.

가상의 도시인 주브로브카 공화국 산자락에 위치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호텔의 손님이었던 거부 마담 D.(틸다 스윈튼)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녀가 남긴 유산 중 모두가 탐냈던 그림인 '사과를 든 소년'이 호텔의 안내인인 구스타브(레이프 파인즈)에게 주어졌다는 발표와 함께 구스타브는 졸지에 마담 D.의 살해자로 몰린다. 구스타브는 그와 늘 동행하는 신참 로비보이 제로(토니 레보로리)와 함께 누명을 풀고 진상을 밝히려 하고 마담 D.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냉혈한 해결사 조플링(윌렘 데포)을 고용해 구스타브를 처치할 것을 명령한다. 긴박하게 쫓고 쫓기며 꼬이고 꼬이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결과를 맞을까. 어떻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현 운영을 제로가 맡게 된 것일까.

 

 

독특한 표현법과 아트 디자인으로 시선을 끄는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기대를 충족시키는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한다. 미니어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웨스 앤더슨답게 곳곳에 활용했다. 구스타브 일행이 탈옥하는 과정이나 산 속 신부들의 도움을 받고 설산을 가로지르는 도망-추격 시퀀스 등은 이런 요소가 극대화된 감칠맛 나는 장면이랄 수 있다. 이는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어떤 이야기라도 전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허구와 과장처럼 보여 희극적인 요소로 받아들이게 한다.

 

 

마담D.가 살해당하면서 일대 혼란이 시작되는 1930년대, 젊은 작가가 호텔을 방문해 호텔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노년의 제로를 통해서 듣게 되는 1960년대, 그 모든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한 노년의 작가와 그 책을 읽는 소녀의 모습이 담긴 1980년대, 이렇게 3개의 시대적 배경을 각각 1.35:1, 2.35:1, 1.85:1의 화면 비로 표현했다. 굳이 화면 비의 차이를 두지 않았어도 각각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면 사이즈로 변화를 주어 더욱 완벽하게 '그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웨스 앤더슨은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에게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작가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도망자의 삶을 살다가 브라질로 피신했으나 나치즘으로 절망적인 유럽의 상황을 보고 끝내 아내와 함께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작가이다. 전쟁의 시대를 배경으로 개인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살벌한 이야기를 유쾌한 표현법으로 담아낸 감독은 작가로부터 영감을 얻은 만큼 시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이야기'를 활용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감독의 전작인 <문라이즈 킹덤>이 음악에 기댄 방식이 인상적이었다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전설' 혹은 '이야기'에 기댄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단되고 계획된 플롯과 형식으로 정갈하게 표현해낸 덕에 영상에는 완벽주의자의 고집이 뚝뚝 묻어난다. 완벽주의자의 작업은 고단하고 스스로를 피곤하게 괴롭히는 작업이었을 텐데 그것을 보는 관객은 피곤함이 아닌 유쾌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니 그것이야말로 이런 작업의 대단함이 아닐까.

 

 

영화는 유산이 가야 할 곳으로 제대로 가고 제대로 지켜지고 제대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마담 D.가 유언으로 남긴 유산의 향방은 쫓고 도망가고 죽이고 살리는 일대의 혼란을 야기한다. 마담 D.의 유산을 놓고 혼란이 벌어지는 사회 배경은 전쟁으로 주도권이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영토와 유산을 뺏고 지키려는 자들의 싸움인 전쟁과 개인의 유산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싸움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결과적으로 그 모든 유산의 향방은 진정한 주인에게로 향하고 제대로 된 곳에서 가치 있게 지켜지고 유지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지켜내고 싶어하는 제로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펴내 전달하려고 한 작가, 그리고 전쟁과 이념으로 고통 받아왔던 작가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들어낸 웨스 앤더슨 감독, 이 모든 사람들의 작업은 그야말로 지키고 유지하고 전달해야 할 유산의 가치를 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