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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로보캅] 정체를 넘어 자유 의지에 방점을 찍다

 

로보캅(2014)

정체를 넘어 자유 의지에 방점을 찍다

성공적인 리메이크이자 리부트

 

1987년 작인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 2014년 호세 파딜라 감독의 리메이크 작으로 돌아왔다. 원작을 본 세대에게는 여전히 강한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이고, 원작을 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필살기로 무장한 여러 '~'들의 홍수 속에서 '로보캅'의 정체를 온전히 받아들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를 2014년에 찾아온 리메이크작은 한마디로 성공한 리메이크이자 리부트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세대에겐 강렬하게 남아있고 어느 세대에겐 정체성이 흐릿한 이 존재를 스크린으로 불러 세울 때엔 양자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특단이 필수 불가결 했을 듯 하다. 오리지널을 기억하는 세대에겐 오리지널의 메시지를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고 사이사이 오리지널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을, 처음 접하게 될 세대에겐 어떻게 경찰 알렉스 머피가 로보캅이 되었고 로보캅이 기존의 '~'들과 어떻게 다르며 그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가 어떤 정신으로부터 나오는지를 설명하여 정체를 분명하게 하는 방식을 택한 듯하다. 오리지널 속 요소들을 유지하면서도 방점을 두는 부분은 힘을 주어 재배치하고 캐릭터 형성에 대한 설명에 공을 들인 것이 조화를 이루는 영리한 완성체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제공한다.   

 

 

폭력의 수위는 조절됐으나 메시지의 수위는 유지

오리지널과 리메이크를 비교할 때 폭력장면의 수위 부분을 거론하는 의견을 종종 보았다. 오리지널은 감독인 폴 버호벤 자신도 폭력 장면의 최고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을 만큼 시각적 폭력 묘사가 강했다. 미국 개봉 시 (현재의 NC-17으로 변경된) 'X등급'을 몇 차례 받다 수정하여 간신히 R등급을 받았다는 것만 봐도 그 폭력 묘사의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런 작품이 국내 개봉 시에는 '중학생 관람가' 였으니 의아할 따름이다.) 반면 리메이크 작은 PG-13 등급(국내에선 12세 관람가)을 받았다. 이에 일부 원작의 팬들은 폭력 묘사의 수위 조절이 이미 리메이크 작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원작과 리메이크 작의 폭력 묘사 정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일례로 경찰 머피가 갱단에 의한 폭력으로 신체가 훼손되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로보캅으로 재 탄생하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원작에는 갱단에 의해 총으로 팔과 다리가 으스러져 잘려지고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장면이 보인다. 한편 리메이크 작에는 폭탄이 설치된 자동차의 폭발로 전신 고도 화상을 입는 것으로 설정됐다. 리메이크 작에서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폭력의 수위가 낮아졌다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폭력은 여전히 끔찍하고 머피에게 미친 영향은 크다. 그 폭력의 정보가 입력(또는 기억)되며 기계 안에 들어간 머피의 정신을 깨우고,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산산조각이 난 신체에서도 여전히 살아 팔딱거리는 자유 의지

가루처럼 부서져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여전히 정신(의지)은 팔딱거리고 자유 의지를 찾는다는 원작의 메시지를 손상시키지 않고 방점을 찍으며 리메이크 작 안으로 옮겨온 작업은 성공적인 리메이크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자유 의지를 강조하는 설정의 논리적임과 드라마틱함은 오히려 리메이크 작 안에서 더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엔딩에서 최후의 적을 처단하는 방식을 비교해 볼 때) 오리지널 <로보캅>의 머피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듯 "내 이름은 머피"라고 말하지만 끝까지 프로그래밍 된 시스템 하에 있었다. 반면 리메이크 속 머피는 자신의 자유 의지를 되찾으며 프로그래밍 상에서 처단할 수 없는 대상을 처단하는 엔딩을 보여준다. 원작이 로보캅이 된 머피의 정체 찾기에 방점이 찍혔다면 리메이크 작은 정체를 넘어 자유 의지에 방점을 찍으며 재정비했다고 할 수 있겠다.

 

 

로보캅으로 재 탄생한 머피의 기능을 테스트 하는 시퀀스를 통해서도 자유 의지에 대한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범죄 현장 시뮬레이션으로 기계 로봇과 '로보캅'의 상황 대처 능력을 테스트하게 되는데  '로보캅'은 기계에 비해 속도 면에서 뒤진다. 이유는 인간이 지닌 감정이 결정에 영향을 미쳐 판단과 행동에 시간이 더 소요되기 때문이다. 유용한 존재로 이용하기 위해 결국 신경을 조절하여 수정된 '로보캅'은 기계 못지 않은 신속한 결정력을 보이게 된다. 그것을 보면서 노튼 박사(게리 올드만) '자유 의지의 착각'을 언급한다. 인간이기에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여기지만 그것이 신경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 머피가 믿는 자유 의지란, 사실은 조작된 것이므로 자유 의지로 착각하는 것일 뿐이란 것이다. 머피의 신경을 조작하는 행위는 로보캅이 일반에 공개되기 직전 발생한 오류 때문에 도파민 수치를 최저로 낮춰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제거하는 데까지 이른다. 이는 머피가 갱단에 의해 신체를 훼손당한 폭력 이상으로 잔인하다. 폭파 사건이 그의 몸을 가루로 만든 폭력이었다면 신경을 조작하는 폭력은 그의 감정을 가루로 만드는 폭력이 된다.

 

 

그런 폭력에 의해 휘둘리는 와중에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는 로보캅 머피의 몸부림은 꽤 설득력이 있게 그려진다. 리메이크 작은 오리지널보다 머피의 사고 전 상황과 사고 후 로보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좀 더 상세한 묘사를 가하면서 그가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표현한다. 자유 의지, 신경, , 항우울제 첨가 등이 언급되는 장면들을 통해 로봇에 들어간 인간의 핵심은 여전히 정신과 연관되어 있음을 인지시키는 방식은 오리지널보다 상세하다. 매일매일 로봇 몸체 안에 갇힌 유일하게 남은 인간 기관을 관리해야 하기에 가족과 함께 머물 수 없는 설정도 설득력을 갖게 된다. 실제의 몸이 아닌 정신으로 컨트롤되는 세상을 경험하게 한 <아바타>까지 나온 마당에 인간의 신경이 진입한 로봇의 설정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럼에도 <로보캅>은 리메이크에서도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덕분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머피가 존재의 이유를 찾고 자유 의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돌진하는 장면에서는 짜릿한 긴장감이 일기도 한다.

 

 

왜 로보캅은 검은 수트를 입었는가

검은색 수트를 입은 로보캅은 낯설다. 트레일러를 통해 공개된 새로운 색깔의 수트를 보면서 리메이크에 대한 우려가 생기기까지 했다. 단순히 강해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오리지널 로보캅의 컬러를 바꾼다는 것은 트레일러만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왜 그가 검은 수트를 입게 됐는지 알 수 있게 되고 그가 다시 오리지널 로보캅과 같은 색의 수트를 입게 되는 결과를 보게 되면 검은색 수트를 입었던 설정은 영화의 내러티브를 탄탄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영화 속 부패한 기업인, 정치인, 언론인, 경찰 등을 묘사하는 컬러로 '블랙'이 기능한다. 그것에 의해 통제되고 조종될 수도 있었던 로보캅은 그들이 결코 제 맘대로 휘두를 수 없었던 정신, 의지를 찾아가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만든다. 뚜렷하게 목소리를 내는 부패한 세력, 그것에 의해 무기력할 수 밖에 없던 존재였지만 그의 몸부림을 통해 자신을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로봇이 아닌 로봇 몸에 들어간 인간이 자신의 본질임을 힘주어 알린다.

이 핵심 메시지가 영화 속에서 살아 숨쉬다 보니 로보캅에게 검은 수트를 입힌 리메이크에 대한 우려는 불식되고 새로운 시작점이 무사히 안착하리라는 안도가 커진다.

 

 

오리지널 로보캅의 향수

먼저 영화 처음과 엔드 크레딧에 사용된 로보캅 오리지널 테마 음악은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하게 오리지널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악의 세력에 의해 큰 사고를 당하는 알렉스 머피의 모습은 약간 변형되어 있다. 하지만 오리지널 로보캅에서 머피가 갱단에 의해 사지가 절단됐던 끔찍한 장면은 영화 후반부 매톡스가 무기력하게 바닥에 누운 로보캅을 협박하는 앵글에서 자연스레 연상된다.

 

감독 호세 파딜라는 <엘리트 스쿼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경찰과 범죄조직의 결탁, 부패한 경찰 내부 조직, 부패한 정치와 미디어에 대한 신랄한 고발과 폭력 묘사로 주목 받은 감독에게 <로보캅> 리메이크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리메이크 계획이 발표된 지 10여 년 만에 완성된 것도 결국 돌고 돌아 이 감독에게 기회가 가기를 기다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부패한 경찰, 타락한 정치인, 소시오패스같은 기업인, 중립적이지 못하고 선도적인 언론인의 모습은 오리지널 그 이상으로 리메이크 작에서 제자리를 찾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