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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ilver screen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냥'이 아니라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는 이야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냥' 이 아니라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는 이야기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와 미도리는 여섯 살인 아들 케이타를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다. 일류기업의 팀장으로 일하고 좋은 집과 환경에서 아들을 키워나가는 료타 가족에게 충격적인 사실이 전해진다. 아이를 출산했던 산부인과에서 아들 케이타와 다른 집의 아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6년 동안 키워온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료타를 뒤흔든다. 바뀐 아이의 가족은 변두리 지역에서 작은 전파상을 하며 소박한 삶을 사는 유다이(릴리 프랭키) 가족이다. 다른 환경과 다른 양식을 지닌 두 집안에서 뒤바뀐 채 살아온 아이들. 부모들은 키워온 아이를 포기하지도 못하지만 친자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시간을 갖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각자의 아들과 지내보기로 하지만 일은 어긋나기만 한다.

 

 

 

"오늘부터 우리를 아빠, 엄마라고 불러"

"왜요?"

"......그냥"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주어진 부모, 특히 아버지라는 입장이 제자리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준비의 시간이 필요함을 말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으로 아버지의 자격은 주어진다. 그러나 정말 아버지가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므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태어나 자라며 환경으로부터 배우는 양식들이 있다. 먹고 씻고 입고 자는 양식, 말하고 듣고 배우는 양식이 있다. 그런 것들은 가정과 학교 등의 환경에서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그렇게 자연스레 익혀져 자기 것이 되는 양식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런 자연스러운 수순 중 하나이기에 별다른 '심사'없이 부모가 될 수 있다. 아이를 갖게 됐을 때 생기는 각오와 책임감은 남다르겠으나 그것이 얼마나 견고한지, 얼마나 바른지는 누가 '심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어렵지 않을 수 있으나 정말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리라.

영화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자연스레 어쩌면 '그냥' 넘겨받은 아버지라는 옷에 대해 진지한 생각의 시간이 필요함을 말한다.

'왜 아버지가 되어야만 해?' 라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준비의 시간도 없이 자연스레, '그냥' 된 아버지의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준비의 시간 후 얻은 답을 통해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모성과 부성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어머니는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그 몸을 통해 세상으로 내보내고 모유를 먹이며 책임을 갖고 '어머니 되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있으리라. 그러나 상대적으로 아버지는 그런 책임을 자신의 몸이나 가족에서보다는 외부에서의 노동 등으로 채우느라 '아버지 되기'에 대한 준비를 할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선지 날 때부터 여성에게는 부여된 것처럼 여겨지는 모성과는 달리 부성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기능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이 의문에 슬며시 답을 던진다. 자신의 몸을 통해 낳은 자식들이 아님에도 사랑과 인내로 양아들을 키워낸 료타의 양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모성과 부성의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넌지시 보여준다. 료타가 혼란을 겪으며 점점 아버지가 되어가는 와중에 양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은 모성과 부성의 본질이 몸, 혈육에만 있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트라우마가 만든 마음 속 얼음장을 깨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뒤바뀌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겪는 두 집안을 보여주고 특히 료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료타는 자신의 아버지의 방식에 대한 강한 저항감을 갖고 성장했다. 양어머니와 살면서 한번도 어머니라고 불러보지 않았다. 지는 것 보다는 이기는 것에 익숙하게 단련된 료타는 일류기업에서 승승장구하는 팀장이고 일에 전념하느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극히 적다. 그런 료타의 과거와 현재가 만든 가치관은 고스란히 료타의 '아버지 되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철저한 규칙을 정하고 '미션'을 주는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아들을 대하는 료타. 그의 모습은 트라우마로 형성된 가치관으로 결국 아들과 아내를 옭아맨다. 료타에게는 자신이 가졌던 상처와 불만을 자식에게는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도였겠고 충실한 아버지의 역할이자 사랑이었겠지만 아내와 아들의 생각은 달랐으리라.

 

료타의 집은 영화 속 다른 집들과 다르다. 다른 집이 지면에서 걸어 들어가는 현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집이라면 료타의 집은 입구가 어떤 모양새인지 보여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아파트다. 방문하는 사람마다 호텔 같다며 두리번거리게 되는 료타의 집은 사람들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로부터 떨어져 견고한 방어막을 두른 공중의 성처럼 느껴진다. 료타의 과거와 현재가 형성한 성정은 거리를 두고 살고픈 영역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규칙과 공간을 고스란히 아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자신이 겪은 상처를 겪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러나 현실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질감을 안겨준다.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뒤바뀜 당하는 철 지난 신파의 소재가 이 영화에서 새롭게 기능하는 것은 이 사건이 료타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면서 그에게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갈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에 있다.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진짜 아들을 데려와 키우며 어긋나는 것들을 경험하며 료타는 비로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시간, 아버지와 양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며 조금씩 마음을 열 계기, 자신을 돌아보며 트라우마를 다독일 계기를 만나게 된다. 료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간다.

 

 

 

료타가 아들 케이타의 걷는 길을 따라 걷다가 함께 유다이의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장면은 료타가 그렇게 아버지의 자리를 이해하며 찾아가게 됨을 느끼게 하며 동시에 보는 이의 마음 속 얼음장을 한 겹 녹여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 료타는 이제 6년 만에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아들에게도, 6년 동안 자신이 키워온 아들에게도 "왜 제가 당신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죠?" 라는 질문에 "...그냥"이 아닌 어떤 이유를 말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