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대해 간단히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스스로 말할 자격이 있음을 깨우치지 못했던 사람에게 그 자격이 있음을 알게 하고 나아가 스피치를 하게 만드는 사람, 즉 그런 개인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친구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이다. 조지6세가 된 버티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지만 자신이 왕의 자격이 있는지 불안해하고 자신이 없다. 말까지 더듬는 자신이 너무 싫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분노를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언어 치료사 로그다. 그는 버티에게 말할 자격이 있음을 깨우쳐주는 치료사이자 멘토였고 그가 왕의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게 만든 친구였다. 내 자격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친구 관계에 대한 영화, 그런 의미에서 <킹스 스피치>는 콜린 퍼스의 영화이자 제프리 러시의 영화가 되기도 한다.
근자에 본 영화 중 가장 정갈한 기분을 선사하는 영화였다. 대사에는 절도가 있고 우아함과 예의가 흐른다. 그 안에 유머 감각이 있으되 군더더기는 없다. 정갈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공을 하는 것이 알렉상드르 데스플랏의 음악이다. 분위기가 달라지는 시퀀스마다 장면을 이끄는 음악은 봄바람처럼 살랑이기도 하고 런던의 안개처럼 우울하기도 했다가 왕의 행진처럼 우아하고 품위가 있기도 하다. 데스플랏은 이 영화 사운드의 핵심은 ‘목소리’와 ‘침묵’이었고 말더듬증을 갖고 있는 왕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간결한 편곡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넘치지 않고 영화의 톤에 맞춘 정갈한 음악은 영화를 돋보이게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가 사랑스럽다. 언어 장애를 갖고 있는 버티는 성실하지만 어릴 적부터 내적 콤플렉스가 있고 차남이기에 왕위에 오를 자격에 대한 자신이 없어 위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 여린 내면을 이겨내려는 의지, 가족을 아끼고 의지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보인다. 스피치 테라피스트인 로그는 치료사보다는 멘토로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카리스마가 있다. 신분은 다르지만 언어 치료에 있어서는 절대 평등을 주장하며 강력하게 치료를 진행하고 사려 깊게 버티의 내면의 콤플렉스를 보듬는 모습은 의지하고 싶은 멘토의 모습 자체였다. 조용하지만 지혜롭게 남편을 지원하고 이끄는 엘리자베스의 모습도 정말 사랑스러웠다. 이처럼 캐릭터가 사랑스럽고 배우 각자의 연기가 매우 좋고 그 앙상블도 너무나도 완벽하기에 이 인물들에 마음이 갈 수 밖에 없다.
사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다. 영국 왕의 이야기이고, 시대극이고, 말을 더듬는 왕이 치료받는 과정을 다룬 영화라면 그 안에서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소를 뽑아낼 수 있을까? 자칫하면 아주 진지해서 지루한, 무게만 잡는 예술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 가지 주제로 기승전결에 따라 흐르는 이야기도 아니다. ‘말더듬증 왕이 치료를 잘 받아 성공적으로 스피치를 한다’로 흐르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언어 치료의 과정과 차남인 버티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 과정을 평행선상에서 함께 보여주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 국민 연설에서 한 번에 임팩트를 가해야 하는 영화다. 그러니 앞에 등장할 이야기를 느슨하게 했다가는 과정도 지루하고 결과에도 큰 인상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늘어질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매 에피소드마다 각각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것이 점점 쌓여 마지막 연설에서 큰 감동을 선사한다. 마지막 연설을 마치고 국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왕과 몇 발치 뒤에 서서 그 왕의 모습을 미소 지으며 지켜보는 로그의 모습은 영화의 전 과정을 거쳐 관객에게 말한다. 이 영화는 말더듬증을 겪은 왕의 치료기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의 중요성, 그 관계의 중요성, 친구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이다. 스스로 자격을 의심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주고 그런 자격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사람,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에 그 감동은 크게 다가온다.
조지6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The Queen Mother)는 자신의 생전에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의 사후인 2002년에서야 시나리오를 위한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작가 데이빗 사이들러가 암 투병을 하게 되면서 작업은 다시 연기됐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2009년 12월에 촬영이 시작된 이 영화는 2010년 전세계 비평단과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드디어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0년 말부터 <소셜 네트워크>와 팽팽한 경쟁을 펼치다 오스카의 승자가 된 <킹스 스피치>. 그 결과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왜 오스카가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오스카의 입맛에는 ‘아직은’ <소셜 네트워크>보다는 <킹스 스피치>가 진리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