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ver the silver screen

[MB의 추억] 또 속으면 바보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에 사용된 나치 선전국장이였다는 괴벨스(Joseph Goebbels)의 말은 이 다큐멘터리의 화자가 온전히 MB임을 알리며 우리가 한 선택의 결과를 돌아보게 만든다. (찍지 않았어도 결국 '우리'.)

"우리는 국민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다."

<트루맛쇼>에 이은 김재환 감독의 이른바 '역지사지 프로젝트 2' <MB의 추억>은 시민의 입장에서 본 MB가 아닌 MB의 입장에서 2007년 대선 선거운동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보여준는 점에서 그것을 보는 관객에게는 '역지사지'라는 표현이 가능하겠다. 하지만 이는 자체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을 위한 도구가 된다, 마땅하게도.

 

2007년 겨울 대선을 앞두고 도심에서 대중을 모아놓고 벌이는 이명박 당시 후보의 선거 유세는 한마디로 논리도 없고 유치해보인다. 번화가 상점 곳곳에 걸린 '세일' '점포임대'라는 표시를 불경기의 신호라고 말하고 그것을 당시 노무현 정권의 무능으로 비난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불경기를 극복하는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자신만만을 넘어 허세를 부리며 호소하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기에 이 모든 반복적 주장이 나오는 순간에 극장 안은 비웃음으로 넘쳐난다. 이른바 747공약을 포함한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4대강 등 벌인 일들에 대한 대책이 안 서는 데다가 자신과 가족과 연관된 각종 비리가 임기 내내 터져나온 현실을 살고 있는 와중에 5년 전 그의 이름이 정신없이 반복적으로 불리워지는 것을 듣는 것은 마치 고문을 당하는 기분과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선거 캠페인 내용에도 이런 표현을 사용했던데 'MB는 보잘 것 없는 외모와 형편없는 목소리를 지니고 있기에'그 모든 선거유세장에서의 호소와 대중들에게 무한히 외치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잘하겠습니다'라는 외침 자체가 진정성있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약장수의 장삿속에서 나오는 말투로만 느껴질 뿐이다. 모든 순간 '고맙습니다'를 외치던데 국민들에게 받은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고맙다고 하는지, 그 미소가 보기에 유쾌하지는 않았다.

한 몫 거드는 것은 그의 유세장에 허수아비처럼 서있는 참모들이다. MB가 대중에게 호소하는 와중 그들의 표정은 마치 '어이쿠, 저렇게 말하는 재주도 있나?' 아니면 '저런 말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네'라는 표정이 얼핏 얼핏 비친다. 영혼이 없거나 교양이 없거나 한 표정들인데 그런 표정들을 보고도 그의 이름을 연신 외쳐댔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이런 현상은 비단 당시 MB의 선거유세 현장에서만 보여졌던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이건 MB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정치인들의 행태를 우리가 날카롭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된다.
그 와중에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괴성을 지르며 추종하는 대중이나 달려들어 사인을 요청하고 사진을 찍어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비친다. 재래 시장에 가도 온갖 대중의 환심 사기에 바쁜 그의 모습과 그 모습에 감동했다며 머리 위로 하트와 승리의 V를 그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다가 나중에는 측은하다. 모두 하나같이 '경제 살려줄 유일한 구세주'로서 이명박 후보의 이름을 외쳤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측은함은 영화의 후반부 당시 이명박 후보를 외쳐대던 사람들이 그의 5년 실정을 경험한 후 실망했다는 인터뷰를 할 때 더욱 명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여전히 지지하거나 그에게 조금 실망했으니 이제는 대안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대한민국 '남동쪽' 지역 시민의 모습은 측은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괴벨스에 말에 의하자면 그 미소를 지었던 시민이 MB에게 이 초월적 능력을 안겨준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시민의 힘이 이번 대선에서 향할 곳 또한 만만찮으니 무서울 수 밖에.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된 '화성 연쇄 살인사건'처럼 소름 끼치고 아픈 사건이지만 감독이 <MB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5년의 기록을 모아낸 것도 결국엔 과거의 과오를 망각한 시민이나 정치인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 과오를 떠올리고 자각하여 (영화속에 인용된) 전여옥이 부르짖었던 것처럼 '두 번 속는 것은 바보'니까 속지말고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영화는 여러모로 MB의 지난 5년을 돌아본다. 물론 그 안에서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없고 잘못한 것도 수치를 제시하거나 논리를 제시하며 따지려는 방식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5년의 행보를 보여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MB의 잘못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하다. 증거와 논리를 들이댔어도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 앉혀놓은 것은 바로 우리 시민들이었으니 5년이 다 지난 마당에 그 논리와 증거를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야말로 부질 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역사의 심판은 때가 되면 이뤄질 것이라는 작은 믿음만 가질 뿐이다.

 

그러면서 영화가 강력하게 한가지 던지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투표하라'. 정치인은 모두 같다, 최선은 없다, 차악을 선택할 뿐이다라고 해도 투표는 해야 하는 것이 최소한이라는 것이다. 되어야 할 사람이 그렇게 없다 해도 안 되어야 할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투표다.
영화 속에서 김제동이 말한 '표를 던지지 않는 유권자를 그 어떤 정치인도 바라보지 않는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투표하지 않는 계층에게 정치인들은 표를 구걸하러 오지 않는다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 투표하지 않으면 그들의 안중에서 완전히 배제된다는 것이고 온갖 불리한 상황을 맞이하는 불운이 겹쳐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투표라는 것은 반드시 해야 당선자가 잘못을 했을 때 비판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여긴다면 어떨까.

 

이 다큐에서 가장 끔찍했던 장면과 가장 역겨웠던 장면이 있다.
가장 끔찍했던 장면은 광화문 촛불 시위를 막기 위해 대형 컨테이너를 틀어막고 그 컨테이너에 걸어놓은 태극기를 전경들이 철거하는 모습이다. 자체만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어쩌면 MB는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을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대로 '정치인들은 표가 없는 곳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고 표를 던졌던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그는 알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한 국민이 투표자의 50%를 넘겼다는 것을 누구보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가장 역겨웠던 장면은 후보 시절 군 부대에 방문했던 장면이다. 식당에서 병사들과 참모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였던 것 같은데 그는 열심히 군대 짬밥을 먹는 이미지에 너무 몰입했는지 사병 하나가 일어나서 '무례가 아니라면 군가 하나 불러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중에도 식사에 여념이 없다. 곧 군가가 시작되고 그는 일어나서 팔을 흔들며 그 군가에 호응한다. 그런데 그 때 카메라는 그의 입에 줌인을 가한다. 오물오물 쩝쩝, 입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입안에 담긴 음식물을 씹는 모습은 너무 추해 보였다. 순간 드는 생각은 그것이었다. '좀 있어보이는 사람은 없었을까.' 속물같은 생각이라도 할 수 없다. 좀 있어 보이고 교양 있고 순간순간 멋을 아는 사람이면 안되는 것인가? 정녕 그런 후보는 없는가. 다행인 건 이번 대선의 주요 후보들은 그런 면에서만은 MB에 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답다. 다행인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