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a Child(1912 ~ 2004)
미국인 요리사, 프랑스 요리를 미국 주류에 소개한 인물,
대표저서 <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1961).
Julie Powell(1973 ~ )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에 등장하는 524가지 레시피를 매일 요리하고 블로깅한 것으로 유명해진 미국 작가. 대표저서 <Julie and Julia: 365 Days, 524 Recipes, 1 Tiny Apartment Kitchen>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아담스가 <다우트>에 이어 함께 출연한다는(하지만 단 한 장면에서도 함께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시선이 가지만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만나는 노라 에프론 영화라는 것에 기대치가 한껏 올라가는 영화가 바로 <줄리&줄리아>다. 요리와 책, 블로그라는 매개로 연결되는 두 실존 인물 줄리아와 줄리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삶의 버터 찾기’ 라고 할 수 있다. 매력적인 배우와 재능 있는 감독이 선보이는 풍미 가득한 영화는 두 시간 내내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남성 요리사 사이에서 유일하게 요리를 배우는 줄리아>
파리의 미국 대사로 임명된 남편을 따라 파리로 떠난 줄리아(메릴 스트립). 멋진 집과 멋진 풍경, 풍미로 가득한 요리가 그녀를 맞지만 그녀는 어쩐지 허전하다. 모자 만드는 모임에도 참여해보고, 카드 놀이를 하는 사교 모임에도 참여해보지만 그녀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일순간 그녀는 문득 뭔가를 떠올린다. 파리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녀를 사로잡았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법률 사무소 상담원이자 비서로 일하고 있는 줄리(에이미 아담스)는 남편과 함께 이사한 집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뭔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빠져나간 기분으로 살던 어느 날 문득 그녀에게 떠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어릴 적 엄마가 늘 존경스러웠던 순간, 그 엄마가 몰입했던 그것, 아버지도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것이 그녀에게 영감을 준다. 이제 그녀는 자신 역시 그것에 몰두해보고자 한다.
다른 시대를 살아간 실존했고 실존하는 두 여성이 문득 발견한 것은 다름아닌 ‘요리’다. 1949년의 줄리아는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우고 그녀만의 레시피로 재창조하여 책(‘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을 내고 미국에 전파한 유명인이다. 그리고 2002년의 줄리는 어릴 적부터 엄마의 영향으로 봐왔던 줄리아 차일드를 롤 모델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한다.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에 담긴 524가지의 요리를 365일 동안 요리하고 그 기록을 매일 자신의 블로그에 남기는 것이다. 이름하여 ‘Julie/Julia Project’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기록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고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삶의 버터 찾기
영화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두 여성을 통해 삶의 소소한 재미를 일깨워준다. 동시에 그 소소한 재미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행위(책, 블로그 등)가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시대를 초월하여 누군가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내게 맞는 것, 내가 진정 매진할 수 있는 목표가 있고 그것을 달성하겠다는 목적이 있는 삶은 세상이 주는 여러 시련 속에서 삶을 즐길 수 있는 힘을 준다. 물론 좌절도 있다만 목표의 세기만큼 그것은 또 다른 동기와 에너지를 주기 마련이다. 그것을 깨닫고 전달하는 두 여성의 삶은 그렇기에 아름답고 귀감이 된다.
인생의 파트너, 당신은 나의 버터
You are butter of my bread and of my life.
버터는 줄리와 줄리아가 만들어내는 요리의 아주 소중한 재료가 된다. 두 여성에게 있어서 남편은 없어서는 안될 버터가 되어준다. 줄리아의 남편은 줄리아에게, 줄리는 그녀의 남편에게 '당신은 내 삶의 버터'라는 표현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이는 내 인생에 진정한 반려자, 훌륭한 서포터를 갖는다는 것의 중요성 또는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건 단순히 ‘여성이니까’’남성이니까’로 시작하는 담론을 넘어 인생을 함께 살아가고 조언자가 되어주고 기댈 곳이 되어주는 ‘파트너’에 대한 의미부여라고 할 만 하다. 메카시즘의 열풍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기도 하지만 줄리아의 남편은 자신의 삶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진정한 ‘파트너’로서 줄리아의 일과 도전을 격려하고 함께 한다. 줄리의 남편 역시 그녀가 블로깅을 하고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는 것에 끊임없는 조언자 역할을 해준다. ‘내조’와 ‘외조’의 양갈래 길에서 한 편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균형을 이루며 각자의 삶에 버터가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부, 파트너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시대를 초월한 기록의 미덕, 위대한 유산
줄리아 차일드는 프랑스의 유명한 코르돈블루(Le Cordon Bleu)를 수료하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묶어 책으로 출간하려고 한다.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싶었으나 영어로 된 프랑스 요리책이 없어서 힘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영어로 된 프랑스 요리책을 내보겠다는 목표가 생긴 것이고 그녀는 뜨겁게 그것에 매진한다. 그녀는 타자기를 통해 그녀만의 레시피를 작성하고 그 원고를 출판 에이전시에 보내서 출간을 학수고대한다. 그녀의 레시피대로 요리를 해본 출판 에디터는 곧바로 그녀의 요리책을 출간할 것을 결정하게 되고 그로 인해 탄생한 것이 지금의 줄리아 차일드를 만든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이다. 줄리아의 남편과 친구들을 매혹시킨 레시피는 출판 에디터를 감동시키고 전 미국에 영향을 미친다.
줄리 파월은 그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하나다. 줄리아 차일드의 책과 그녀의 요리 방송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365일간 524개의 요리를 하고 그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 블로그가 유명해지고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명세를 탄 그녀의 레시피와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고 마침내 그녀의 경험은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 노라 에프론은 두 여성이 쓴 책을 기반으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현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 되고 출간된 지 48년이나 지난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을 다시금 베스트셀러 1위 목록에 올리기에 이른다. 기록의 전달과 영향력은 위대한 유산으로 현시대를 흐른다.
이처럼 그녀들의 삶의 버터 찾기에 대한 기록은 스스로를 만족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퍼지고 퍼져 작거나 크게 세상을 사로잡는다. 기록 방식의 기술적 차이를 막론하고 그 시대에 맞는 그녀들의 기록은 그렇게 세상에 영감을 준다. 그리고 ‘삶의 버터 찾기’가 주는 긍정적 에너지는 세상에 그 힘을 전파한다. 영화의 마지막, 줄리아의 요리 박물관에 간 줄리가 그녀의 사진 앞에 미리 준비해간 버터를 두고 나오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그것으로부터 보람을 찾게 되는 것, 인생이 할 수 있는 멋진 역할 중 하나인 듯 하다.
노라 에프론
오랜만에 만나는 노라 에프론의 영화는 큰 기대감을 갖게 했다. <유브 갓 메일>이후, 그러니까 2000년 이후에는 다소 주춤한 듯한 그녀의 행보는 <줄리&줄리아>로 재개됐다. 그녀는 다른 삶을 사는 두 사람을 조화롭게 묘사하고 그들을 이어내는 이야기에 재능을 보인다. 동시에 사람의 관계를 맺게 만드는 매체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룰 줄 아는 작가다.
미국의 동과 서에 사는 두 남녀가 주인공인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두 남녀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로 ‘끌림’을 경험한다. 이후 편지를 주고 받고 영화 <An affair to remember>처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기로 한다. <유브 갓 메일>은 어떤가. 앙숙인 두 남녀가 우연히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다. 물론 서로의 신분은 모른 채 진행된다는 것은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영화의 양념으로 사용한 흔적이다. 서로 많이 다른 환경에 처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기에 각자의 이야기를 균등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이야기, 그리고 그 다른 사람들을 이어주는 설득력 있는 매개가 등장해야 하는 이야기를 맛나게 만들어내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 바로 노라 에프론이고, 그 섬세한 재능은 <줄리&줄리아>에서 여전히 빛을 발한다.
두 배우의 스크린 쟁탈전
단 한번도 함께 만나지 않는 영화 속 두 주인공은 각자의 에피소드를 통해 관객 흡인 경쟁을 펼친다. 영화의 주관객층을 20대 여성으로 본다면 그들 중 몇 명이나 줄리아 차일드를 사전에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생소한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그 인물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고 그 사람의 특징을 발견하게 하는 마술은 메릴 스트립이라는 노련한 연기 마술사를 통한다. 무려 188 cm에 이르는 키와 기묘한 엑센트라는 외형 자체만으로도 개성 있는 캐릭터임에 틀림없으나 관객이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는 사람이 메릴 스트립이라는 인상을 받지 못하고 온전히 줄리아 차일드라는 사람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힘은 배우라고 해서 모두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메릴 스트립은 또 한번 그녀의 명성을 실감케 한다.
이번에 에이미 아담스를 보면서 느낀 것은 그녀가 ‘옆집에 사는 아는 여자’같은 평범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데 재능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마법에 걸린 사랑>이나 <다우트>에서의 모습은 다소 극단적이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공주 역할은 현실감 있는 캐릭터는 아니고, 극도로 순수한 수녀 캐릭터도 평범한 캐릭터는 아니다. 그러나 <줄리&줄리아>에서 그녀가 연기한 줄리는 그저 평범한 직장 여성일 뿐이다. 삶에 적당히 젖어있지만 삶이 조금은 불만족스럽고 많이 갖고 있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이다. 이런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관객을 캐릭터에 동화하게 만드는 것이 그녀가 이 영화에서 성공한 부분이다. 이 역할을 그간 노라 에프론 영화에서 맥 라이언이 했던 것처럼 귀여움이 강조된 캐릭터로 연기했다면 거부감이 살짝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이미 아담스는 그 경계를 알고 있는 듯 맥 라이언을 따라하지 않으면서도 ‘노라 에프론표’ 현대 여성을 창조하고 연기하는 데 성공했다.
두 배우의 팽팽한 스크린 쟁탈전 덕분에 관객은 온전히 줄리아
와 줄리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 시대의 관객에게 두 배우는 ‘버터’와도 같은 존재가 된다.
<사족>
요리와 블로그, 책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라서 프로모션/마케팅적 측면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기도 많은 우리나라의 블로거 출신 요리책 저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 덕분에 미국에서도 줄리아 차일드의 첫 책이 48년이 지난 지금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지경이라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