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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가족] [동경이야기]보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보다

 

 

동경가족

<동경이야기>보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보다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개인이 획득한 신분은 교환되지 않은 채 각자의 역할이 서로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와 자녀라는 신분을 얻은 뒤 그걸 뒤바꿀 수 없다. 부모인 자들은 누군가의 자녀이고, 자녀인 자들은 누군가의 부모다. 살면서 새로운 신분을 추가하게 되지만 신분을 맞바꿀 수는 없다. 평생을 부모의 자녀이고 자녀의 부모로 산다. 그런 역할은 가계를 타고 흐른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각각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는데 항상 못다한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나 자녀는 한없이 받는 쪽이고 부모는 한없이 주는 역할이다. 자녀로서 많이 받았으니 많이 되돌려 드려야지 생각하는 때는 이미 늦어버리고 받은 것은 다시 자녀들에게 쏟아낸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 역할을 바꿀 수 없으니 삶은 무한한 아쉬움 덩어리가 되는 듯 하다. 그래선지 가족을 소재로 한 이야기도 끊임없이 만들어지나 보다.  

 

 

 

 

야마다 요지의 <동경가족>은 노년의 부부가 결혼생활, 직장생활 하기에 바쁜 자녀들을 만나보기 위해 오랜만에 동경에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장성해서 결혼하고 자녀까지 두고 있지만 노부부에게 그들은 여전히 걱정되고 염려되는 자녀들일 뿐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 자식간이지만 일에 치이고 각자 생활이 있는 아들과 딸은 부모의 방문을 버거워한다. 함께 하려던 계획도 자꾸 어그러지고 함께 하는 시간도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동경가족>은 잘 알려졌듯이 오즈 야스지로의 53년작 <동경이야기>의 리메이크 작이다. 노부부의 자녀가 다섯에서 셋으로 줄었고 이른 나이에 죽어 며느리만 등장했던 셋째 아들을 되살려 이야기의 중심에 배치한 것이 눈에 띄는 차이랄 수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유사하다. 부모는 그 때나 지금이나 부모이고 자식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자식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동경이야기> 속 노부부의 막내가 60년 후 <동경가족> 속 노부부로 등장하는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봐도 되겠다 싶은 것도 여전히 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으로 가족이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오즈의 <동경이야기>가 정적인 화면에 담긴 담백한 수묵화 같은 느낌이었다면 야마다 요지의 <동경가족>은 조금 더 속도감이 붙었다.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 영상, 일명 '다다미숏'이라 불리는 오즈 특유의 차분한 테이크와 달리 숏이 더 짧게 많이 붙은 것, 그 때보다 더욱 현대화된 문물이 많이 등장해서 현란해 보이는 것 등이 외적인 차이를 만든다.

 

 

 

 

 

영화가 남기는 내적 인상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동경이야기>가 부모와 자녀의 울타리 안에서의 개인의 삶을 이야기한다면 <동경가족>은 사회와 국가를 향해 시선을 좀 더 멀리 둔다.  <동경이야기>의 공간 안에서 안으로 이동하는 인물들과 달리 <동경가족>은 시야를 외부로 돌린다. 투어 버스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타워'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도쿄 스카이 트리 등의 개발 풍경을 부지런히 좆는 장면이나 도쿄 대관람차가 반짝이는 야경이 훤히 보이는 호텔에서 커튼을 닫지 않고 한참동안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 등을 등장시켜 바깥을 향해 좀 더 먼 지점을 바라보는 설정을 담았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혼란한 상태와 정치,경제적 불안정함을 바라보며 '바로 잡을 길이 없어 보이는 나라'에 대한 한탄과 더 나은 환경을 후대에 물려주지 못한 노년 세대의 염려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애써 후대에 희망을 갖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고 할 수 있겠다. 오즈의 원작에선 죽었던 인물을 살려놓고 그 인물을 중심에 배치하면서 후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

오즈의 <동경이야기>에서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셋째 며느리인 노리코다. 선한 미소와 예의 바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일찌감치 남편과 사별했음에도 시부모를 만나고 보살피는 것에 극진한 모습은 효와 공경의 모범적인 인물로 보여진다.

 

<동경가족>에서는 원작에서 죽은 것으로 설정됐던 셋째 아들을 되살려 막내 아들 쇼지(츠마부키 사토시)로 등장시키고 결혼을 약속한 그의 여자 친구 노리코(아오이 유우)를 등장시킨다. 세대가 달라졌기에 노리코의 캐릭터는 조금 더 적극적인 여성으로 묘사되지만 여전히 상냥하고 예의 바르며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젊은 여인이다. 쇼지와 노리코가 각각 어머니,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 장면은 모두 인상 깊게 남는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을 일으키는 장면들은 어머니와 쇼지가 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 어머니와 노리코가 나누는 대화 장면, 장례 후 고향집에서 아버지와 노리코가 나누는 대화 장면, 아버지와 쇼지가 옥상에서 한마디 주고 받는 장면이다. 원작에서 애틋한 아들과 착한 며느리로 존재감을 드러냈던 캐릭터는 리메이크 작에서는 극의 중심에서 감동을 이끌면서 노부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인물로서 역할을 한다. 노부부는 가장 걱정하던 막내 아들의 삶에 노리코란 존재가 함께 한다는 것에 안도하는데 이는 노인층이 고민하는 젊은 세대의 미래, 일본 사회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희망을 품어도 되겠다는 안도로 보여진다. 애써 끄집어낸 긍정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