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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진짜 삶을 가져다준 순수

 

                                                                      JTBC 드라마 <밀회>

 

밀회 (안판석 연출, 정성주 극본)

진실된 삶을 가져다 준 순수

 

"음악적 교감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끌림과 사랑.

 퇴폐적 시선과 관음적인 시선, 순수와 속물의 충돌"

<밀회> 1,2회를 보고 블로그에 남긴 표현이다. 
나의  격정이 아니고 남의 격정이기에 처음 보기에 낯설었던 그것은 회를 거듭할수록 오혜원(김희애)과 이선재(유아인)에게서 나에게로 전달됐다.

 


불같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불륜의 밀회이지만 각자의 상황이 너무나도 이해할만 하기에 '불륜'이라는 표현을 빼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둘의 밀회를 망 봐주고 싶다'는 어느 시청자의 글에 공감이 될 만큼 둘의 처지에 연민이 생겼다.

혜원은 자신의 처지, 신분을 벗어나 올라가고 싶었기에 더러운 꼴을 견디며 산다. 그만큼 대우를 받으니 더러운 꼴 당해도 불쌍하진 않다 싶겠으나 그 과정이 그녀의 자유롭게 생동했어야 했던 젊음, 뜨거웠어야 했던사랑의 기회마저 앗아갔다는 것에 측은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단정하게 쓸어올린 그녀의 머리칼도 꼿꼿한 그녀의 허리와 고개도 부끄러움 없이 반짝이는 물광의 얼굴도 그저 위장으로 보일 뿐이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선재는 강렬하다. 젊음 보다도 순수한 열정이 앞서는 이선재라는 이름은 20년도 넘게 악착같이 움켜쥐었던 오혜원의 위장을 벗어던지게 만든다. 젊다고 다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는 않다. 그러니 이선재의 젊음보다는 그 본연의 순수함과 열정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매력이자 무기이다.


보통 (극에서) 순수는 순수를 잃은 영혼에 의해 타락하거나 상처받아 쓰러졌다. 어떤 이는 순수를 잃는 순간을 성장이라 부르기도 하고 적응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렇게 순수는 영원하지 못할 무엇, 언젠가는 깨질 무엇, 깨지더라도 더 강한 뭔가로 덧씌워지는 무엇으로 여겨졌고 그려졌다.
그래서 나 또한 이 드라마는 결국 조금 슬프더라도 순수를 잃은 오혜원이라는 영혼에 순수를 잃는 순간을 맞을 이선재의 비극으로 향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오혜원도 잃었던 순수의 기운을 이선재에게서 발견하고 매료되지만 결국 결정권은 혜원도 선재도 아닌 제3자들인 타락한 세상과 주변인일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혜원에 의해 선재가 버려지거나 혜원이 선재가 아닌 현실을 택하며 선재라는 순수가 상처받고 상실되는 것으로 이 드라마가 끝을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10회를 넘어가면서 그 예상은 틀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돌이켜보니 선재가 오혜원의 집에 처음 방문해서 미친듯이 '네 손을 위한 피아노 환상곡'을 연주했던 그 순간부터 선재의 순수함이
오혜원의 잃어버린 순수마저도 되찾아 빛나리나는 예상을 했어야 옳았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자신들의 부정을 덮고 오혜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던 서필원 일가가 꾸미는 꿍꿍이의 전모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오혜원의 지략에 감탄하게 되는 11회, 12회를 지나서도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선재의 순수함이고 열정이었다. 그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갈라지는 마음 때문에 울었다.

그러다 15회에 조인서 교수가 부패한 횡포에 학교를 떠날 마음을 갖게 된 제자들에게 읽어주는 편지글은 이 드라마가 결국 순수한 의지에 손을 들어주고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데 방점이 있음을 깨닫게 했다. 가장 싸구려 악기를 갖고 있었음에도 그 악기에 영혼을 담고 애정을 담아 연주한다면 그 가치를 세상이 알게 될 것이라는 것, 그 영혼은 순수를 잃고 부패한 마음에 깃드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김인겸 전무와 악수를 했지만 끝내 순수의 상징과도 같은 학교는 내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오혜원의 모습 또한 순수를, 순수를 대변하는 이선재가 속한 학교를 지키기 위한 강인한 의지로 보였다.

 

순수한 사랑을 그렸던 <사랑의 인사>(94년 MBC 베스트극장, 안팍석 초기 연출작)와 <우리들의 천국>(90년대 MBC드라마, 정성주 초기 극본작)으로부터
<밀회>를 만든 정성주 작가, 안팍석 PD는 50년대 중후반 태생으로 이제 50대 중반을 넘기고 있다. 이들이 세상에 이름을 알렸던 90년대, 당시 30대였던 이들이 푸릇푸릇하게 드라마를 통해 보였던 것들은 당시 청춘들의 순수한 열정과 뜨거운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부와 권력 앞에 굴하지 않고 가난하더라도 꿋꿋했다. 그것이 어떤 트렌드를 형성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만든 <밀회>에는 당시의 그들이나 그들이 만들었던 드라마의 청춘들처럼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차차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내고자 순수를 내려놓았던 오혜원이라는 인물이 나오고, 그들이 만들었던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여전히 순수하게 빛나는 이선재가 함께 들어있다. 이 두 세대를 함께 넣고 그 두 세대가 세상의 시선을 받아가면서까지 만나고 뜨겁게 교감하는 이야기는 결국 지난 세대가 잃었던 순수를 지금 세대는 잃지 않고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 시간이 지나고 봐도 결국 가치있는 것은 순수한, 정의로운 열정이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순수에 대한 희망도, 순수를 다시 일깨울 힘도 지금의 청춘에게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순수했고 뜨거웠으나 그것을 지켜내는 것을 과거 세대는 실패했을지도 모르나 지금 세대는, 아직 순수를 잃지 않고 그것을 품고 있는 지금 세대는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단지 바라는 마음 뿐만 아니라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순수했으되 순수를 잃고 만 세대가 지금 해야 할 일임을 말하는 것 같다.
뜨거운 젊음으로 사랑했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열심으로 애정으로 키웠으나 세상 속에서 그들을 지켜내지 못해 울고 있는 지금의 40대, 50대들의 마음이 이 드라마를 만든 이들의 마음 속에 역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순수와 속물의 충돌에서 순수가 완승을 거뒀다. 그것이 희망이기도 했다.

또한 삶을 산다는 것이란,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열쇠를 혜원은 얻었다, 한참이나 어린 선재로부터.
그로하여금 내 삶을 감옥 안에 넣느냐 마느냐 하는 것도 환경이나 힘이 아닌 나 자신임을 깨닫는다.
갇혔으되 자유롭게 두 발 뻗고 자게 되는 혜원과 문을 굳게 닫고 나서는 선재의 모습에서 진짜 삶, 그것을 가져다 준 순수의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렇게 뜨거웠던 그들의 밀회는 아름답게 막을 내렸다.